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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63

행복산책 당신은 행복합니까?이 질문에 자신 있게 "네"라고 답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복하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언제나 불행하다고 느낀다.행복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사라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은 평생 동한 행복하기 위해서 갖은 고통과 불행을 삼키며 살지만, 진정한 행복을 맛본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잠시 행복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어떤 순간 잠시의 행복을 느꼈다가도 돌아서면 불행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인간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행복은 불행의 텃밭에서 불행의 영양분을 먹으며 자라기 때문이다.따라서 불행이 없으면 행복을 싹 틔울 수 없다.불행만이 행복을 잉태할 수 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그렇다면 불행을 익혀라.그 껍질 속에 행복이.. 2024. 5. 7.
목련이 있는 냉랭한 시선으로 이기를 찾는 잔인한 도시,늦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담장 밑으로 4월이 왔습니다. 창밖의 목련은,순결한 빛으로 가지가지마다 은쟁반을 올려놓고 수줍음을 애써 감춥니다. 목련!예전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내게 다가옵니다.그리움으로.사랑으로. 사무치는 그리움에 자꾸만 안타까워지는 내 마음을 아는 목련이 있어 이만큼이라도 가슴에 담을 수 있음을 기뻐합니다. 목련이 있는 4월은,깊은 겨울잠을 깨고 봄을 알리는 3월과,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5월과 이웃하여 더욱 정감이 있습니다. 이제야 나는 목련이 피는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지금 저 꽃송이 어디에선가 가만가만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합니다.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송이 사이로 언뜻언뜻 당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다가가 안아보고 싶지만,영영 보이지.. 2024. 4. 30.
막둥이의 하루 중학교에 입학한 막둥이 녀석이 외모에 꽤 신경을 쓴다. 여학생들이랑 같은 반에서 공부하다 보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게나 뒹굴며 살아온 그에게는 새로운 일상이다. 더운 여름날 웬만하면 그냥 자면 좋겠지만, 자신에게 선심 쓰듯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고는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기 바쁘게 거울을 본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삐죽삐죽 뒤엉켜서 마음에 내키지 않아 속상한 모양이다. 머리를 감으면 될 텐데 귀찮은지, 잠 덜 깬 얼굴에 짜증을 덕지덕지 붙여서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성이다가 물을 바르고 빗으로 빗는다. 그러나 세상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머리카락들이 시위하듯 총총히 일어선다. 한 발짝도 양보하고 .. 2024. 2. 20.
어느 이방인 아내의 고백 이 국 만 리에 정을 묻고 사랑을 심고 싶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의 가시 같은 슬픔을 뒤로하고 그녀는 고국을 떠나왔다. 어차피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사랑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절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굳이 많은 돈이 필요했던 건 아니겠지만, 가족들의 궁핍을 면할 수 있는 정도의 돈과 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돈이면 되었다. 아직은 철부지라면 철부지다. 부모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 새로운 삶을 찾아 보모 곁을 떠나왔다. 이 모든 아픔을 다 치료하고도 남을 만큼 꿈은 야무지게 커져, 더 이상 품을 비집고 들어올 불행은 없다. 십 대 일의 경쟁을 자랑스럽게 통과했다. 사랑할 대상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다. 친구들 간의 경쟁으.. 2023. 11. 6.
두물머리의 아침 아침이 부스스 잠에서 깨었지만, 어젯밤의 뇌성을 다 지우지 못한 듯 혼미하게 흔들리는 틈을 타서 두물머리로 향했다.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은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훌쩍 떠나는 길에, 성난 바람이 제 성질을 다 재우지 못했나 보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인연을 끊으려는 듯 광풍이 매몰차게 내리 꽂힌다. 거리의 가로수를 마구 흔들어댄다. 낙엽이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감기며 거리를 헤맨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 수 없을 바람은 내가 두물머리로 떠나는 이유를 알까. 입구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서로 맞붙어서 터널을 만들었다. 지난여름의 모진 풍상도 고스란히 몸을 보존했던 은행잎이 떠나는 가을에게 시위하듯 샛노랗게 하늘에 걸려있다. 소녀의 감성을 다 지우지 못한 한 여인이 블랙홀에 빨.. 2023. 10. 19.
설악산 공룡능선 공룡을 만나기 위해 오색약수터의 새벽을 열어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대청봉에서 일출을 맞았다. 대청봉 정상석에는 인증숏을 찍기 위해 늘어선 줄이 제법 길었다.  일행 중에 대청봉 정상을 첫 상봉하는 친구가 있어서 우리도 인증숏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내 바로 뒤에는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 친구가 둘 있었다. 그 뒤로 우리 일행들이 서 있었다. 나는 대수롭잖게 친구들에게 내 앞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뒤에 섰던 젊은 남자가 대뜸 목소리를 돋워 당신이 뒤로 오면 되지, 왜 친구들을 앞으로 오라고 하느냐고 성을 낸다.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만한 일에 큰 산에 올라서 아침부터 성을 내느.. 2023. 10. 4.
고추와 등록금 담임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을 때마다 내 잘못을 인정할 수 없었다. 서러운 마음에 학교를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설움만 더해 갈 뿐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나의 꿈은 머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는 꿈이 없었다.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도 몰랐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막연하게 자식의 미래를 설계하신 듯했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꼴머슴부터 시작해서 큰 머슴 되고, 알뜰살뜰 새경을 모아 논도 사고, 장가들어 아들 딸 낳아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겠거니 생각하셨다. 6학년 초 봄이었다. 아직 한기가 성성하던 보리밭에서 열심히 밭을 매던 어머니는 이웃에서 밭을 매고 있던 친구 엄마와 아들의 진학에 대해 얘.. 2023. 9. 21.
신화神話 사진 출처 : 다음 "대 ~ 한민국! - 짝짝 짝 짝짝!" 지축을 흔들어 영혼을 깨우는 함성이 밀려온다. 신화가 시작되던 반만년을 거슬러 핏속으로 흐르는 전율에 내 몸을 던진다.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재워두었던 민족의 혼이 뜨겁게 달궈진다. 신화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신화는 의도된 말재주나 글 솜씨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민중들의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여 있던 무지개 같은 영혼이 용암처럼 분출될 때 탄생한다. 역사 같은 신화 - 이 한 편의 드라마가 각색되어 우리들 가슴에 각인되기까지는 엄청난 에너지가 불출되어야 하고, 그에 세월의 때를 더해야만 신화 같은 역사로 전해 오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혼이 꿈틀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월드컵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멋진 신화 한 편을 .. 2023. 9. 8.
녹슨 우정 오래되어 녹슨 우정은 참 편하고 좋다. 탈색될 염려가 없어서 좋고, 먼지가 앉아도 털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다. 비가 오거나 습기에 노출되어도 녹슬까 봐 애를 태우지 않아도 좋고, 떨어뜨려도 부러질 염려가 없어서 좋다. 옛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어서 좋고, 다가올 미래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서 좋다. 작은 일에도 헤프게 웃을 수 있어서 좋고, 좋지 않은 일에도 서로 위로가 될 수 있어서 좋다. 가끔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생겨도 쉽게 소화할 수 있어서 좋고, 때로는 친구의 마음을 읽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좋다. 오랜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난 듯이 편해서 좋고, 자주 만나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좋다. 약속을 어겨도 그러려니 이해할 수 있어서 좋고, 약속을 잘 지키면 듬직해서 좋다. .. 2023. 8. 11.
나비와 애벌레 삶이 그렇다. 비록 초라하고 힘들지라도 그것은 과정이다. 세상을 향하여 마음껏 날갯짓하는 나비도 한때는 세상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있었다. 나비가 가진 멋진 날개는 그에게 주어진 애벌레 시기를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나비의 날개를 맹목적으로 탐하거나 시기하지 말라. 세상을 향하여 두려움이나 얄팍한 속셈을 갖지 말고 그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열심히 기어 보라. 해진 살갗 틈으로 날개가 돋는다. 나비는 날개를 가졌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그는 또다시 애벌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때는 성공의 단맛에 빠져 행복감 속에 살아가고 또 한때는 실패의 쓴맛에 빠져 불행 속에서 살아간다. 세상은 묘한 것이어서 성공이라는 것은 내게 주어진 한 번의 이정표일 뿐이.. 2023. 5. 26.
십년지기 멋모르고 아쉬움 없이 살아온 세월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의 호기심과 설렘이 있었지만, 철없는 아이들처럼 호들갑 떨면서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가슴에 곱게 담아 지어내는 실웃음 하나에도 하늘이 넌지시 웃어주곤 했기에, 당신을 생각하며 나만의 사랑을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삶이 깊어지고 시간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가면서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며 힘들거나 더러워도 불평 없이 내 그림자를 지켜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세월의 탑이 쌓아지는 만큼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학교나 .. 2023. 5. 18.
언 놈이여! 사월 초순의 한재 미나리 골은 아직 봄기운을 다 펴지 못해 냉기가 골짜기마다 남아있다. 아침 해가 병풍을 열고 말갛게 고개를 내밀어 골짜기를 비추면서 고모부님의 칠순 잔치가 시끌벅적해지며 흥이 돋는다. 아무래도 잔치는 고모부님 친구 분들이 주축이다. 식사를 하고 술잔을 돌리면서 바쁜 안부를 챙긴다. 술잔이 늘어갈수록 건들건들 허리춤이 느슨해지고 혀가 길어지면서 취기가 돈다. 처음 해보는 칠순 잔치라 앞뒤 순서가 분명하지 않고 다소 뒤숭숭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흥겨운 자리에 작은 흠이 있으면 무슨 대수일까. 형식이 많아 따분하고 지루하던 행사가 대충 끝나고 뒤풀이에 들면서 놀자판이 되었다. 아들아 딸아, 며느리야 사위야. 놀아라, 부어라, 마셔라, 불러라, 업어라..., 그런데 마음만 들뜰 뿐, 톱니바퀴..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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