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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538

비슬산 산은 철 따라 꽃이 피고, 꽃이 지고 하늘의 기운을 따라 비바람이 오가고 인간은 꽃을 만나고 싶었고 비바람을 피하고 싶었다. 비슬산에 가는 날 참꽃은 저물어 갔고 비는 종일 내렸고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산은 처음부터 그랬다 [산행 일시] 2024년 4월 20일 [산행 경로] 유가사 - 천왕봉 - 대견사 - 비슬산 자연휴양림(10.5km) [산행 시간] 4시간 2024. 4. 22.
북한산, 도봉산 [진달래꽃] 매향을 품은 매화 단아한 절제를 닮은 복사 순정을 얘기하던 순백의 이화 개구쟁이 투정을 닮은 노란 개나리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랴 만화방창 너 잘났네 나 잘났네 참꽃은 어쩌라고 설운 분홍빛 모진 바위틈에 눌러 담고 파리한 바람결에 살포시 게워내어 님 오시는 기다림 향기가 계면쩍다 [산행 일시] 2024년 4월 13일 [산행 경로] 불광역 장미공원 - 탕춘대능선 - 비봉능선 - 청수동 암문 - 대남문 - 대동문 - 백운대 암문 - 우이동 - 우이암 - 신선대 - 도봉역(25.4km) [산행 시간] 10시간 50분 2024. 4. 14.
덕룡,주작,두륜산 강진과 해남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호남의 알프스라 알려진 덕룡, 주작산의 봄. 진달래와 암릉의 멋진 조화가 아스라이 기억의 파일에 저장된 지 10년은 넘은 듯하다. 아름다운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몇 번 별렀지만 쉬 기회를 잡지 못했다. 서울 양재역에서 밤 11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졸고 있던 새벽을 깨워 도착하니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 빛을 쫓아 몰려든 부나방을 닮은 그들은 덕룡산의 암릉과 붉은 진달래의 마법에 걸려든 사람들이다. 오징어 배를 연상케 하는 전등을 밝히고 만선을 꿈꾸며 새벽 4시에 가파른 등로를 따라 걷는다. 희꾸 무례한 아침이 열리고 이윽고 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진달래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봉오리들이 서로 곁눈질하며 아직은 .. 2024. 3. 31.
북한산 영봉 백운대까지 오르기가 마땅찮으면 영봉에 올라보라. 절반의 에너지로 산 향기를 오롯이 품을 수 있어서 좋다. 가끔은 에너지가 충분할 때에도 굳이 다 쓰기보다는 아껴 쓰며 천천히 걸어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진달래가 한창 필 시기인데도 아직 맹맹하다. 한기를 쉬 떨치지 못한 까닭이리라. 생강나무 꽃이 노란 양기를 양껏 내뿜고 있으니 보름쯤 지나야 진달래가 기지개를 켜겠다. 볕이 잘 드는 양지 녘에 노랑제비꽃이 오종종 피어있다. 나를 닮아 성급하게 서두른 느낌이 든다. 낼모레 다시 한기가 들 텐데 잘 견뎌내기를 바라며 눈 맞춤을 하니 씽긋 웃어준다. 가끔은 더디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격려를 보내주니 때때로 산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산에 오를 때마다 조급하게 서두른다. 상반된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2024. 3. 26.
落枝낙지(청계산) 옛골에서 이수봉 오르는 소나무 길에 나뭇가지들이 혼란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우렁찼던 소나무 가지가 꺾이고 목이 비틀어졌다. 폭설과 바람에 팔을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자라난 세월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늘의 명령이었으니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아픔을 위로할 길은 없다. 들보 만한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으리라. 아픔이지만 희생을 통하여 민족을 살리려 했던 독립운동가 선생님들의 영혼을 떠올려보는 삼일절이다. 소나무는 이번 기회에 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목이 비틀어질 수 있음을 간파해서 아픔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걱정 없이 웃자랄 때만 해도 잘난 줄만 알았는데, 겸손하지 못했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간의 삶도 이.. 2024. 3. 3.
정상석이 두 개(운악산) 봄이 오는 길목에 함박눈이 내렸다. 길이 막히면 더디 올 수도 있겠다 싶어 마중을 나간다. 행여 상고대를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했었는데, 나뭇가지에는 눈이 다 녹고 바닥에 잔설만 깔려있다. 오랜만에 만난 운악산의 듬직한 바위와 향기는 변함이 없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출렁다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새롭게 신설한 등로를 올라야 한다. 한마디로 기능성이 전혀 없는 관광용 출렁다리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다. 산과 어울리지도 않고, 기능성도 없는 출렁다리에는 건너는 사람도 뜸하다. 휴일인데도 이 정도이니 얼마 못 가서 흉물로 남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이 상태도 유지하려면 비용을 들여야 할 텐데 한숨이 나온다. 미륵바위를 지나면서부터 .. 2024. 2. 26.
삼각산 세밑에 산문을 여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유년시절 친구들은 방학을 맞아 자치기, 깡통차기, 얼음 썰매 타기, 딱지 치며 놀기 바쁜데 나는 아버지를 따라 추운 겨울산을 올라 삭정이, 솔가지 등 땔감을 구하던 그 시절. 어린 나이에 나무를 한들 얼마나 하겠냐만은 아버지는 맏아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는 일이 든든했던가 보다. 깜깜한 발자국을 따라 새벽을 깨우니 새록새록 단잠에 들었던 손녀가 기지개를 켠다. 어느덧 손녀는 내 가슴속에 더 진한 인연의 향기로 스며든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지는 묘한 이 감정선은 무엇일까. 설날에 산소를 찾아 아버지께 고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도록 보살핌을 구해야겠다. 준비 없이 길을 나선 터라 발걸음이 더듬거린다. 다행스럽게 손전등을 비춰주는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반갑게 인.. 2024. 2. 9.
소백산 겨울을 떠나보내기 전에 소백산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여차저차 기회를 놓치게 되면 마음이 개운치 않아 한 해 보내기가 찜찜하다. 하여 칼바람을 맞으리라 단단히 각오를 하며 소백산을 오른다. 솔직히 소백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나 수려한 풍광이 마음을 끄는 산은 아니다. 험준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산이다. 그나마 철쭉이 피는 계절에는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어 가끔 안부가 그리운 산이다. 겨울에 소백산을 오르는 이유는 면역 예방주사 같은 세찬 바람을 맞기 위함이다. 예전에 지인은 겨울 산행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 아내와 함께 겨울 소백산에 올랐다가 바람을 제대로 만나 혼쭐이 난 적 있다. 장갑도 부실했고, 볼싸개 등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느 겨울 산 오르듯 올랐다가 감당할 수 없.. 2024. 2. 5.
도봉산 여성봉 산은 왜 오르는가? 매번 자문하기도 하지만, 산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한 마디로 잘라 답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이기 때문이다. 삶에 정도正道가 없는 것처럼 산에 가는 이유도 특별히 내세울만한 명제는 없다. 오늘은 어딘가 비어 있는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라 단정하고 도봉산 오봉탐방센터의 산문山門을 연다. 음달에 쌓인 눈 길이 다소 미끄럽기는 해도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능선에 오르니 사방천지 시야가 탁 트인다. 모처럼 맞는 햇볕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 같은 햇볕이어도 산에서 맞는 햇볕은 도심에서 맞는 햇볕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도심에서 맞는 햇볕이 인공적인 느낌이라면 산에서 맞는 햇볕은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이다. 여성봉을 친견하고 갑진년 한 해를 균형 있게 채워 갈 음기를 .. 2024. 1. 14.
덕유산 겨울산을 오를 때마다 산호초 같은 상고대를 만나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언제나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던 덕유산이었는데, 올해는 찰떡같이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눈에 가려 보지 못했던 산맥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니 또 다른 행운이다. 동엽령에 올랐는데 바람이 예전 같지가 않다. 순한 바람에 햇볕이 쬐는 풍경이 어색하기만 하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비닐 쉘터를 준비했었는데 펼쳐보지도 못했다. 컵라면과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동엽령에서 향적봉 오르는 길이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유달리 지루하게 느껴진다.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사진 찍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바람이 세차고 추울 때에는 앞만 보고 고통을 벗어나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던 까닭이리라. 속을 다 .. 2024. 1. 7.
태백산 죽어 천년이라던 주목 고사목들도 몇 년 사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흔적을 지운다. 지난여름 태풍을 견뎌냈을 나무들도 소리 없이 내린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속절없이 꺾여 삶의 궤적을 멈췄다. 자연은 그러한 것이었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리 두려울 게 없다. 경계를 구분 짓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일이지만, 나무에 매달린 고드름은 또 다른 의미를 던진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드름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악기가 되어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 반면에 죽은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드름은 얼음 조각 같아서 바람이 불어도 반응이 없다. 나무의 본질은 변한 게 없지만 그들의 경계에는 물이 있었다. 나무속을 흐르는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태백산과 나. 지표면과 발바닥의 경계에는 무슨 .. 2024. 1. 3.
甲辰年 새해 福 많이 지으세요. 새해 용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가설이 진리가 되어 버린 어느 날부터 새 날을 맞는 게 두려워졌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설렘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기어이 오고야 말 오늘이지만, 새해를 맞는 첫날에는 투덜대지 않고 용의 꼬리를 잡고 유영을 한다. 이른 새벽을 깨워 인왕산 일출을 맞으러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새해맞이 젊은 진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들머리 진입이 쉽지 않다. 젊은 친구들은 왜 새벽잠을 마다하며 일출맞이 줄에 서 있을까.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증일까. 아니면, 새해 건강한 일상을 다짐하기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을까. 다행인 것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마음에 짜증이 섞이지 않았다. 모두들 기대감에 가득 찬 미소를 품고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 주로 계단으로 이..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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