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지하철을 타고 양주역에 내리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동안 미답지로 남겨뒀다. 가까이 있어서 별 시답잖게 생각했던 산이었는데, 막상 샅바를 잡고 겨뤄보니 예사롭지 않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등 이름값 하는 산들이 많지만, 불곡산 또한 그에 못지않다.
상봉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평범한 육산의 면모를 갖췄다. 상봉 정상에 올라서면 그리 높지 않은데도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올라선 듯 사방이 탁 트인다. 하늘 맑은 가을날에 올라서면 참 좋겠다. 상봉에서 임꺽정 봉우리 까지는 암릉 구간이 많지만,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산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암릉 구간에는 기암들이 즐비해서 산행하는 맛이 짭짤하다. 동물농장을 연상케 하는 갖은 동물 형상을 한 바위들이 산객을 반긴다.
임꺽정 봉에서 둘레길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그 옛날 임꺽정이 전설을 써 내려가던 길을 따라 잠깐 의적(義寂)의 체취를 느껴본다. 무엇을 훔쳐 누구에게 줄까. 악어 한 마리 훔쳐 정치하는 놈들에게 안겨줄까. 향기 짙은 예쁜 찔레꽃 한 송이 훔쳐 잊힌 애인의 가슴에 달아줄까. 세상 뭐든 다 훔칠 수 있었던 임꺽정을 만날 수 있다면, 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의로운 체하며 선량한 백성들 선동하고 농락하는 놈들의 마음 한 자락 훔쳐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뜯기면서도 살아야겠기에 기를 쓰고 고개를 내 민 민들레 한 송이, 너에게 내 마음자리 하나 묻어 둔다. 아무리 힘들어도 향기를 잃지는 말게나. 나는 언제든 그 향기를 쫓아 너를 찾으리라. 안녕.
[산행 일시] 2025년 5월 31일
[산행 경로] 양주역 - 양주시청 - 불곡산 - 철탑 - 상봉 - 임꺽정봉 - 악어바위 - 임꺽정 생가터 - 양주시청 - 양주역(12.4km)
[산행 시간]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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