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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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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영봉 백운대까지 오르기가 마땅찮으면 영봉에 올라보라. 절반의 에너지로 산 향기를 오롯이 품을 수 있어서 좋다. 가끔은 에너지가 충분할 때에도 굳이 다 쓰기보다는 아껴 쓰며 천천히 걸어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진달래가 한창 필 시기인데도 아직 맹맹하다. 한기를 쉬 떨치지 못한 까닭이리라. 생강나무 꽃이 노란 양기를 양껏 내뿜고 있으니 보름쯤 지나야 진달래가 기지개를 켜겠다. 볕이 잘 드는 양지 녘에 노랑제비꽃이 오종종 피어있다. 나를 닮아 성급하게 서두른 느낌이 든다. 낼모레 다시 한기가 들 텐데 잘 견뎌내기를 바라며 눈 맞춤을 하니 씽긋 웃어준다. 가끔은 더디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격려를 보내주니 때때로 산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산에 오를 때마다 조급하게 서두른다. 상반된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2024. 3. 26.
북한산 비봉/의상능선 [진달래꽃] 사막에 묻어둔 분홍빛 청춘 춘설이 분분하던 메마른 삭정이에 꽃눈을 붙인다 어찌 알았으랴 어설픈 향기에 벌 나비 감기들까봐 애써 감췄던 사연 겨울과 봄 사이 너와 나 사이 분홍 꽃망울을 터뜨릴까 말까 말간 얼굴에 수줍은 첫정 봄이 오는 길목을 막고 따스한 햇살 한 줌 가슴에 품는다 [산행 일시] 2024년 3월 23일 [산행 경로] 불광역 - 장미공원 - 탕춘대 능선 - 비봉 - 사모바위 - 문수봉 - 나한봉 - 나월봉 - 증취봉 - 용혈봉 - 용출봉 - 의상봉 - 북한산성 입구(12km) [산행 시간] 7시간 2024. 3. 24.
94회 동아마라톤 (Full-45) [마라톤은 고통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다거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극한의 고통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겪는 고통과는 결을 달리한다.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왜 별나게 고통을 즐기려 드는 걸까. 마라톤을 할 때마다 고통의 극한치에 이르는 35km 지점을 지나면서 갈등이 인다. 왜 달리고 있는 걸까. 삭여낼 수도 없는 번뇌를 억지로 눌러보지만 소화가 되지 않는다. 겨우내 연습이 모자랐던 탓으로 결승점에 다가갈수록 축축 늘어진다. 마음은 뻔하지만 발이 움직이지를 않으니 안타깝다. 먼 길을 달려왔으니 힘이 빠졌을 텐데도 씩씩하게 차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일 .. 2024. 3. 18.
기회 큰 고기를 삼킬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고기를 삼키려면 고기의 몸집보다 더 크게 입을 벌려야 한다. 노력과 준비 없이 큰 고기를 삼키려다 자칫 입이 찢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고기가 많아도 그것을 삼킬 수 있는 큰 입이 없으면 그것은 먹이가 될 수 없다. 2024. 3. 14.
풍도 바람을 피해 바람을 기다렸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양지 녘에 모여, 바람에 쓸려 바람을 쫓아온 객들에게 쌉싸름한 향기를 품은 사생이 나물과 알싸한 달래를 안긴다. 풍도 바람꽃의 가녀린 꽃대를 닮은 할머니들의 연한 미소에 발목을 묶고 이러쿵저러쿵 흥정을 한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지만, 겨우내 언 땅을 이불 삼아 봄을 기다렸을 노루귀와 차가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풍파를 견뎌내고 온정을 내미는 할머니들과는 묘하게 닮아있다. 풍도 대극이 그 자리에서 사시사철 향기를 물어내듯, 할머니들의 작은 꿈들도 더 이상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사생이 나물 한 봉다리를 덥석 뺏어 배낭에 넣었다. 풍도 할머니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돌아오는 뱃전에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주름진 웃음이 바람 자락을 놓칠.. 2024. 3. 11.
물에 대한 短想 지구를 포함한 대기권에서 물의 절대량이 변하지 않았는데, 세계 각국에서는 물이 부족하다고 야단이다. 물 좋고 산 좋다는 금수강산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물은 어디로 갔을까. 물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물은 지구에 있으며, 일부는 대기권 안에서 구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물이 부족하다. 물이 부족하다 함은 물의 절대량이 줄었다는 게 아니라 물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다. 역사를 이어오면서 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최근에는 1인당 물 소비량도 비교하지 못할 만큼 많이 늘어났다. 인간은 자연이 스스로 정화하고 교류하는 물의 흐름에 끼여 들어서 그 흐름을 교란하고 있다.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역할을 자연이 맡고 있는데, 자연이 재.. 2024. 3. 8.
落枝낙지(청계산) 옛골에서 이수봉 오르는 소나무 길에 나뭇가지들이 혼란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우렁찼던 소나무 가지가 꺾이고 목이 비틀어졌다. 폭설과 바람에 팔을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자라난 세월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늘의 명령이었으니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아픔을 위로할 길은 없다. 들보 만한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으리라. 아픔이지만 희생을 통하여 민족을 살리려 했던 독립운동가 선생님들의 영혼을 떠올려보는 삼일절이다. 소나무는 이번 기회에 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목이 비틀어질 수 있음을 간파해서 아픔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걱정 없이 웃자랄 때만 해도 잘난 줄만 알았는데, 겸손하지 못했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간의 삶도 이.. 2024. 3. 3.
아!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Half-36) 궂은 날씨를 열고 갑진년 마라톤을 영접한다. 올해 들어 처음 참가하는 마라톤이라 일종의 始走祭시주제인 셈이다. 갑진년 올 한 해도 무탈하고 행복하게 달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겨우내 일기가 고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여차저차 게으름 부린 탓에 몸이 무겁다. 첫 시작이니만큼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리고자 다짐한다. 그런데 속도가 별로 나지 않는데도 다리 근육이 뻐근하고 호흡이 고르지 못하다.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이다. 하프 지점 까지는 그런대로 달릴만하다. 기록은 저조해도 달리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25km 지점부터는 쉽지 않다. 달릴까 말까 고민이 생긴다. 기록은 포기하고 끝까지 마무리하고자 입술을 깨물었다. 작년 본 대회에 참가했을 때처럼 달리기 참 힘들다. 결승점 1km를 남겨 놓.. 2024. 2. 28.
정상석이 두 개(운악산) 봄이 오는 길목에 함박눈이 내렸다. 길이 막히면 더디 올 수도 있겠다 싶어 마중을 나간다. 행여 상고대를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했었는데, 나뭇가지에는 눈이 다 녹고 바닥에 잔설만 깔려있다. 오랜만에 만난 운악산의 듬직한 바위와 향기는 변함이 없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출렁다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새롭게 신설한 등로를 올라야 한다. 한마디로 기능성이 전혀 없는 관광용 출렁다리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다. 산과 어울리지도 않고, 기능성도 없는 출렁다리에는 건너는 사람도 뜸하다. 휴일인데도 이 정도이니 얼마 못 가서 흉물로 남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이 상태도 유지하려면 비용을 들여야 할 텐데 한숨이 나온다. 미륵바위를 지나면서부터 .. 2024. 2. 26.
막둥이의 하루 중학교에 입학한 막둥이 녀석이 외모에 꽤 신경을 쓴다. 여학생들이랑 같은 반에서 공부하다 보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게나 뒹굴며 살아온 그에게는 새로운 일상이다. 더운 여름날 웬만하면 그냥 자면 좋겠지만, 자신에게 선심 쓰듯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고는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기 바쁘게 거울을 본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삐죽삐죽 뒤엉켜서 마음에 내키지 않아 속상한 모양이다. 머리를 감으면 될 텐데 귀찮은지, 잠 덜 깬 얼굴에 짜증을 덕지덕지 붙여서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성이다가 물을 바르고 빗으로 빗는다. 그러나 세상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머리카락들이 시위하듯 총총히 일어선다. 한 발짝도 양보하고 .. 2024. 2. 20.
[ 時論]건국전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8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나라 건국의 역사는 그 당위성이 부정되고 있다. 누구에 의해서, 누구를 위하여 역사는 부정되고 있는 것일까. 2024년 2월에 이승만 대통령의 왜곡된 업적을 바로 잡으려는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되었다. 김덕영 감독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정부수립 과정, 정부수립 후 6.25 전쟁 수습과 자유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그의 여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그동안 중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단편적으로 다뤘으나 우리는 건국의 역사를 심도 있게 알지 못한다. 물론, 이 영화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규정짓기에는 아직 공부가 모자란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인식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의 역사가 부정적인 측면에서 인식되고 폄.. 2024. 2. 13.
삼각산 세밑에 산문을 여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유년시절 친구들은 방학을 맞아 자치기, 깡통차기, 얼음 썰매 타기, 딱지 치며 놀기 바쁜데 나는 아버지를 따라 추운 겨울산을 올라 삭정이, 솔가지 등 땔감을 구하던 그 시절. 어린 나이에 나무를 한들 얼마나 하겠냐만은 아버지는 맏아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는 일이 든든했던가 보다. 깜깜한 발자국을 따라 새벽을 깨우니 새록새록 단잠에 들었던 손녀가 기지개를 켠다. 어느덧 손녀는 내 가슴속에 더 진한 인연의 향기로 스며든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지는 묘한 이 감정선은 무엇일까. 설날에 산소를 찾아 아버지께 고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도록 보살핌을 구해야겠다. 준비 없이 길을 나선 터라 발걸음이 더듬거린다. 다행스럽게 손전등을 비춰주는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반갑게 인..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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