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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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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여성봉 산은 왜 오르는가? 매번 자문하기도 하지만, 산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한 마디로 잘라 답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이기 때문이다. 삶에 정도正道가 없는 것처럼 산에 가는 이유도 특별히 내세울만한 명제는 없다. 오늘은 어딘가 비어 있는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라 단정하고 도봉산 오봉탐방센터의 산문山門을 연다. 음달에 쌓인 눈 길이 다소 미끄럽기는 해도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능선에 오르니 사방천지 시야가 탁 트인다. 모처럼 맞는 햇볕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 같은 햇볕이어도 산에서 맞는 햇볕은 도심에서 맞는 햇볕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도심에서 맞는 햇볕이 인공적인 느낌이라면 산에서 맞는 햇볕은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이다. 여성봉을 친견하고 갑진년 한 해를 균형 있게 채워 갈 음기를 .. 2024. 1. 14.
諸行無常 제행무상 [J에게] 친구! 당신 마음속에 울고 있는 자신을 본 적이 있는가. 자네는 그런 적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정한다.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업신여겼다고 가정한다. 진정한 당신의 가치는 당신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평정심을 가지고 잘 지내는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살필 줄 알아야 진솔한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자네는 심한 우울감에 행복의 매듭도 슬픔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결국, 삶은 우울한 것이어서 태우면 재만 남는다고 생각한다. 삶을 영위해야 할 가치를 폄훼하고 집착할 이유를 찾지 못할뿐더러 구차하게 찾을 생각도 않는다. 우울감이라는 게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자네에게 찾아온 손님인 것은 분명하다. 손님 .. 2024. 1. 10.
덕유산 겨울산을 오를 때마다 산호초 같은 상고대를 만나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언제나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던 덕유산이었는데, 올해는 찰떡같이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눈에 가려 보지 못했던 산맥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니 또 다른 행운이다. 동엽령에 올랐는데 바람이 예전 같지가 않다. 순한 바람에 햇볕이 쬐는 풍경이 어색하기만 하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비닐 쉘터를 준비했었는데 펼쳐보지도 못했다. 컵라면과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동엽령에서 향적봉 오르는 길이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유달리 지루하게 느껴진다.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사진 찍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바람이 세차고 추울 때에는 앞만 보고 고통을 벗어나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던 까닭이리라. 속을 다 .. 2024. 1. 7.
태백산 죽어 천년이라던 주목 고사목들도 몇 년 사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흔적을 지운다. 지난여름 태풍을 견뎌냈을 나무들도 소리 없이 내린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속절없이 꺾여 삶의 궤적을 멈췄다. 자연은 그러한 것이었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리 두려울 게 없다. 경계를 구분 짓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일이지만, 나무에 매달린 고드름은 또 다른 의미를 던진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드름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악기가 되어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 반면에 죽은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드름은 얼음 조각 같아서 바람이 불어도 반응이 없다. 나무의 본질은 변한 게 없지만 그들의 경계에는 물이 있었다. 나무속을 흐르는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태백산과 나. 지표면과 발바닥의 경계에는 무슨 .. 2024. 1. 3.
甲辰年 새해 福 많이 지으세요. 새해 용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가설이 진리가 되어 버린 어느 날부터 새 날을 맞는 게 두려워졌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설렘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기어이 오고야 말 오늘이지만, 새해를 맞는 첫날에는 투덜대지 않고 용의 꼬리를 잡고 유영을 한다. 이른 새벽을 깨워 인왕산 일출을 맞으러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새해맞이 젊은 진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들머리 진입이 쉽지 않다. 젊은 친구들은 왜 새벽잠을 마다하며 일출맞이 줄에 서 있을까.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증일까. 아니면, 새해 건강한 일상을 다짐하기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을까. 다행인 것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마음에 짜증이 섞이지 않았다. 모두들 기대감에 가득 찬 미소를 품고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 주로 계단으로 이.. 2024. 1. 2.
아름다운 꿈 가물한 우주에 별 하나.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는 예쁘고 상냥한 또 다른 별을 만나 아름다운 별을 잉태하였으니 천지간에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있으랴.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 보다 더 신기한 것은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새 아기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이다. 새해가 기지개를 켜고 열리는 문틈으로 건강한 에너지를 품은 태양이 떠오르면, 아름다운 꿈을 간직한 예쁜 별 하나 생긴다는 사실이 이토록 좋을까. 생각할수록 흐뭇해지는 상상하지 못할 기쁨이다. 위대한 우주의 질서가 흐트러짐 없이 만들어 내는 인연에 감탄할 뿐이다. 새 아가! 새 생명을 잉태하고 만삭이 될 때까지 건강한 마음으로 키워 온 계묘년은 참 고마운 한 해다. 이.. 2023. 12. 29.
삼각산 인생을 살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남이 보지 않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대체로 남을 속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주 가끔은 남을 속이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눈 내린 삼각산을 오르면서 숨 가쁘게 살아온 한 해를 되짚어 본다. 언제나 아쉬움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에게 더 솔직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변명을 덜해도 세상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육십 대에 접어드니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두렵기보다는 품이 넉넉해진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익숙함을 느껴본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했나 보다. 이제 유년기의 본성을 찾아가는 듯하다. 많.. 2023. 12. 27.
계방산 산에도 그리움이 있다.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 그리움을 따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한 겨울 계방산에 오른다. 메마른 감성 너머 향기마저 희미해져 가는 나 자신을 깨워보려는 아름다운 매듭이다. 이 길에서 사라져 버린 그리운 것들을 떠올린다. 애지중지 나만의 욕심이었는데, 내려놓고 나니 별 것 아님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산너울의 빛들을 오롯이 드러낸 겨울산에 엷은 먹빛을 들어 한숨으로 그려본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한 여름에 들이쉬었던 긴 숨을 이제야 뱉어낸다. 산호초를 만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온 산에 수정 같은 보물이 천지에 널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감탄을 쏟아내는 틈으로 욕이 섞여 나온다. 속앓이 같은 감동을 표현해 내는데 한계를 느끼면서도 행복하다. 난데없이 까만 까마귀 .. 2023. 12. 24.
달리는 습관 아침 기온 영하 13도를 밑돌아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기억되는 날. 한강변을 달리는 사람들은 분명 바람이 든 것이여. 그렇지 않고는 분간 없이 이렇게 무리할 리가 있나. 꽁꽁 싸매고 달려도 춥기는 춥다. 바람을 맞서며 달릴 때에는 바람을 등지고 싶은 유혹이 인다. 맹추위를 뚫고 바람에 맞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손발도 얼고, 입술도 언다. 탄천과 한강에는 가마우지 떼들이 천연덕스럽게 자맥질하며 여유를 부린다. 핫팩도 없이 버티는 걸 보면 대단한 녀석들이다. 어쩌면 그들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더운 여름철에는 풀이 죽어 축 늘어진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추운 날에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깃털에 윤이 난다. 겨울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 분명할 거야. 우리도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에 동장군이 닥.. 2023. 12. 18.
무명 용사의 봄 가끔은 쫓기듯이 살아가는 하루가 내게 주는 의미를 새겨본다. 주어진 삶을 되새김질하면서 향기를 찾기도 한다. 거친 삶 속에서도 행복은 있다. 무명용사 그들은 쫓기듯이 살아가는 하루가 힘들고 귀찮아서 꿈을 접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꿈이 어떤 색깔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꿈은 국립현충원에 말없이 서 있는 대리석 묘비였다. 왜 사라졌는지도 모른 체 봄을 기다린다. 그들을 일러 무명용사라 한다. [일 시] 2008년 4월 9일 [장 소] 국립 서울 현충원(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2023. 12. 15.
청와대 윤석열 신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을 두고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신임 대통령은 청와대에 한 발 짝도 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로 버텼다. 이를 두고 풍수지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리배쯤으로 비아냥거리며 야당에서는 협조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통령실로 지정한 국방부 건물의 리모델링 비용을 승인을 해주지 않아 입주가 늦어지기도 했다. 신임 대통령이 청와대를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에 대한 명분을 뚜렷이 밝힌 바는 없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딱히 없는데, 끝까지 버텼던 것은 청와대 건물의 허술한 보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한 공조 기사가 간첩이었는데, 근무를 마친 뒤 북한으로 입북했다는 사실을 탈북한 고위급 인사가 밝힌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청와.. 2023. 12. 13.
삼각산 의상능선 겨울산은 솔직해서 좋다. 여름에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골짜기의 생김생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 다 내려놓았다. 의상능선 길에 올라서면 좌측으로는 원효봉이 의상봉과 키재기 하듯 봉긋 솟아 있고, 그 뒤로는 숨은 벽 능선을 따라 백운대가 위엄 있게 서 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을까 봐 까치발을 딛고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고개를 갸웃 내밀고 있는 인수봉은 귀엽기까지 하다. 백운대, 인수봉과 나란히 만경대가 삼각의 꼭짓점을 맞추고 있어서 우정이 돋보인다. 그 아래로 노적봉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버티고 있어서 든든하다. 고개를 들어 더 멀리 시선을 던지면 도봉산 오봉 능선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려는 듯 그리움을 닮아 있다. 우측으로는 응봉능선이 올망졸망 하늘과 경계를 ..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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