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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울산바위 서봉 울산바위는 애틋한 사랑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지가 설악산 국립공원이었다. 친구들이 흔들바위 전설을 들먹이며 자랑을 늘어놓을 때, 나는 그들의 찰지고 왁자지껄한 환희에 함께 스며들지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도시로 유학 떠나보낸 아들 학비 마련하기 빠듯한 부모님께 차마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설악산을 누비고 다닐 때, 수학여행 가지 못한 학생들은 따로 모여 빈 운동장에서 잔 돌을 줍고 있었다. 그때 나는 껄렁한 친구들 틈에 끼여 담배를 배웠다.  전국 산을 다 누비고 다니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울산바위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미답지로 남아 있었다. 드디어 45년간 전설로 남아 있던 울산바위 품에 안겼다. 설악산 대청봉, 공룡능선을 누비며 그저 애틋하게 바라만 봤던 ..
伐草短想 벌초단상 개운하게 벌초를 했는데도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벌초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반증이다. 집안에서는 아직까지 8촌 이내의 소 문중이 함께 벌초를 하는 문화를 견지하고 있다. 모두 벌초에 참석하면 좋겠지만, 벌초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형평성이 맞지 않아 불참자에게 벌금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친족 간에 장려할 일은 아니다.  다행인 것은 자주 만날 기회가 없는 친족들이 벌초를 기회로 함께 모여 안부를 여쭈고 추어탕을 끓여 함께 먹는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화다.  문제는 참석하는 사람들은 늘 참석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 보니 벌금부과가 능사는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벌초할 때마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벌초를 함께 하는 시스템을 ..
익숙한 것과 낯 섬 아내와 가정을 이룬 지 33년이 넘었지만 심하게 다툰 기억은 없다. 가끔 가벼운 말다툼을 한 적은 있지만 대수롭잖은 일이어서 기억파일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 다투지 않으면서도 나름 살갑게 살아온 것은 아내 덕분이다. 나는 퉁명스러운 면이 많아 가끔 퉁퉁거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아내가 슬기롭게 잘 받아줘서 무탈하게 생활을 이어오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 설거지 하다가 그릇을 엎어두는 방식과 행주 뒤처리 하는 방식이 눈에 거슬려서 퉁퉁거렸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내가 짜증을 섞어 목청을 돋운다. 아내는 자신한테 왜 짜증을 내냐며 짜증을 낸 것이다. 나는 일상적인 퉁퉁 거림이었는데 아내가 평소답지 않게 민감하게 반응하여서 깜짝 놀랐다. 갑작스럽게 당한 공격이라 미처 대꾸도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
어머님 전 상서 어머님!별고 없으신지요? 지난 설날에는 진중하게 정을 나눌 겨를도 없이 도깨비에게 쫒기 듯 서둘러 다녀오느라 어머님을 뵙고 되돌아오는 길이 내내 편치 않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님께서는 자식의 머리에 백발이 늘어가는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아마 세상의 때(시절)를 짊어진 사람들을 가려서 잘 살펴주려고 표식을 하기 위하여 하늘이 정한 일인 듯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면 될 듯합니다. 어머님께서는 경기가 나빠서 많이 걱정되시겠지만 너무 심려치 마세요. 경기가 잠시 비틀거리는 것도 하늘의 일이라 우려만으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오르막을 힘차게 오르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을 수월하게 내려가면 오르막을 만나듯이 세상은 리듬을 따라 움직입니다..
선택 책을 읽다가어느 순간, 건성으로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책 속에서 어려운 명제를 만나면책을 덮어야 할지,아니면 건성으로라도 읽어야 할지,그것도 아니면,명제를 풀기 위하여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어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할 일이다.차라리 책을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까.그것도 후회를 만들기는 매냥 한 가지다.
북한산 삼천사 계곡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슬기로운 방법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즐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볕더위에 계곡을 찾는다. 연신내에서 향로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더디다. 예사롭게 한 달음에 오르던 길을 중간중간 쉬어갈 수밖에 없다. 쉬어가지 않으면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 향로봉 오르는 중간 못 미쳐서 약수터에서 마음껏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남는 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열기를 식히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서너 번 쉬어서 향로봉 정상에 오르니 혓바닥이 길게 늘어진다. 이런 더위에 산행을 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나마 삼천사 계곡에 몸을 담근다는 기대감이 있으니 버틸만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지쳐가고 길 위에서 단단해져 간다. 산은 육체의 능력으로..
여름날의 隨想 삶이란 때론 진부하기도 하지만한편으로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격동적이기도 합니다.그런 삶에서우리는 늘 삶을 지배하려고 합니다.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욕망을 지우지 못합니다.지극히 인간적인 면이기도 합니다. 나의 울타리에서밖을 내다보면서 행복을 꿈꿀 때도 있었습니다.그때는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던 때문이지요.그러나세월 지나고 보면울타리 안에서나울타리 밖에서도 쉽게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행복이 어디로 숨었을까요.그것은 아니겠지요.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행복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행복그거 별거 아닌데우리는 행복보다는 불행에 익숙해져 있습니다.그러고 보면불행이라는 인자가어쩌면 행복의 씨앗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가진 우리는그것이 아름다움이라..
북한산 백운계곡 무더운 여름을 피하기 위하여 멀리 이동하는 것은 또 다른 무더위에 포위되는 경로일 것이다. 하여 가까운 북한산 백운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더위를 쫓아 여기까지 따라온 마음의 티끌들이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는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낮은 폭포를 이루는 시원한 물줄기가 반겨주고 소나무의 청량한 향기가  손을 내밀어 잡아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갖은 야생화들이 가을을 잉태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 대견하다. 산행할 때마다 힘을 보태주는 친구들이어서 언제나 반갑게 맞는다. 늘 보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덜컥 두려울 때도 있다. 야생화 군락지에 다른 잡초들이 침범해서 군락지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연의 섭리를 에둘러 변호하지는 않는다.  계곡에 발을 담그니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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