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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동대문 마라톤(Half-38) 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가을이 태풍의 힘을 빌어 기운을 냈다.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물러갈 기세가 없어서 은근 걱정했었다.  며칠 전에는 미사리에서 마라톤 대회를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해서 대회 도중에 중단했던 일도 있었다. 9월의 기온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더위였다.  대회 하루를 앞두고 태풍이 불어 더위를 밀어냈다. 하루아침에 기온이 섭씨 10도 떨어졌다. 가을이 뜸도 들이지 않고 냉큼 다가서는 걸 보니 급하긴 급했나 보다.  설익은 밥처럼 또다시 더위와 실랑이를 벌일지는 몰라도, 대회 당일 마라토너에게는 이만한 행운이 없다. 하늘은 높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니 드디어 마라토너의 계절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대회 진행이 어수선해 출발이 엉망이 되었다. 마..
'테러리스트 김구' 를 읽고 [머리에]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을 접하고 잠시 충격을 추스르고 책을 읽었다. 그냥 읽을 수가 없어서 메모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독후감을 형식으로 썼다. 책의 구성은 사실에 근거한 논거를 제시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에 대하여 주석을 달았다. 시공간적 배경을 세밀하게 나열하였으므로,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요약하기에 급급했다. 다만, 그동안 신화처럼 받들던 김구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작가는 이 시점에서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면서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김구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가려진다면, 우리는 독립운동사와 건국사를 포함한 근현대사를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구에 대한 진실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이대로 묻힌다면, 우리는 떳떳하지 못한 ..
어머님 전 상서 어머님! 자식들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쓸려 나가 버리고 빈 둥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외로움만 남았겠지요. 어머님께서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명절이었는데, 꿈에서 본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스치듯 헤어지고 나면 얼마나 허전하시겠습니까. 부모 자식 간에 인연의 정이 아직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일 년에 몇 번 상봉하는 것으로 인연이 정해준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금번 추석에는 증손녀와 첫 상봉을 하게 되었으니 더 없는 기쁨이었지요. 저 역시도 내내 뿌듯했습니다. 더 많은 손주들을 안겨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절이 녹록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저 하늘이 정해주는 대로 인연의 날줄과 씨줄이 맺히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행운이라 생각하고 고운 마..
관악산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아랑곳 않고 산을 오른다. 어젯밤에 내린 비로 촉촉해서 좋기는 하지만 높은 습도 때문에 오늘 산행 길이 만만치 않겠다. 석수역에서 호암산 삼성산 관악산을 넘어 사당역까지 꽤 장거리 산행이라 마음 매무새를 단단히 여몄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호흡도 쉽지 않다. 호암산 정상에 이를 즈음 벌써 지친다. 막걸리 한 잔으로 땀을 훔치고 산을 달랜다. 산은 언제나 그랬지만 오를 때마다 그리움을 더한다.  산을 좋아하는 이는 산을 닮고 바다를 좋아하는 이는 바다를 닮는다 했다. 나도 어느새 산을 닮아가고 있는 걸까. 가만히 되짚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그를 닮고 싶은 마음이 있음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산의 무엇을 닮고 싶은지는 잘 모르..
설악산 울산바위 서봉 울산바위는 애틋한 사랑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지가 설악산 국립공원이었다. 친구들이 흔들바위 전설을 들먹이며 자랑을 늘어놓을 때, 나는 그들의 찰지고 왁자지껄한 환희에 함께 스며들지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도시로 유학 떠나보낸 아들 학비 마련하기 빠듯한 부모님께 차마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설악산을 누비고 다닐 때, 수학여행 가지 못한 학생들은 따로 모여 빈 운동장에서 잔 돌을 줍고 있었다. 그때 나는 껄렁한 친구들 틈에 끼여 담배를 배웠다.  전국 산을 다 누비고 다니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울산바위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미답지로 남아 있었다. 드디어 45년간 전설로 남아 있던 울산바위 품에 안겼다. 설악산 대청봉, 공룡능선을 누비며 그저 애틋하게 바라만 봤던 ..
伐草短想 벌초단상 개운하게 벌초를 했는데도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벌초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반증이다. 집안에서는 아직까지 8촌 이내의 소 문중이 함께 벌초를 하는 문화를 견지하고 있다. 모두 벌초에 참석하면 좋겠지만, 벌초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형평성이 맞지 않아 불참자에게 벌금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친족 간에 장려할 일은 아니다.  다행인 것은 자주 만날 기회가 없는 친족들이 벌초를 기회로 함께 모여 안부를 여쭈고 추어탕을 끓여 함께 먹는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화다.  문제는 참석하는 사람들은 늘 참석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 보니 벌금부과가 능사는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벌초할 때마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벌초를 함께 하는 시스템을 ..
익숙한 것과 낯 섬 아내와 가정을 이룬 지 33년이 넘었지만 심하게 다툰 기억은 없다. 가끔 가벼운 말다툼을 한 적은 있지만 대수롭잖은 일이어서 기억파일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 다투지 않으면서도 나름 살갑게 살아온 것은 아내 덕분이다. 나는 퉁명스러운 면이 많아 가끔 퉁퉁거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아내가 슬기롭게 잘 받아줘서 무탈하게 생활을 이어오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 설거지 하다가 그릇을 엎어두는 방식과 행주 뒤처리 하는 방식이 눈에 거슬려서 퉁퉁거렸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내가 짜증을 섞어 목청을 돋운다. 아내는 자신한테 왜 짜증을 내냐며 짜증을 낸 것이다. 나는 일상적인 퉁퉁 거림이었는데 아내가 평소답지 않게 민감하게 반응하여서 깜짝 놀랐다. 갑작스럽게 당한 공격이라 미처 대꾸도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
어머님 전 상서 어머님!별고 없으신지요? 지난 설날에는 진중하게 정을 나눌 겨를도 없이 도깨비에게 쫒기 듯 서둘러 다녀오느라 어머님을 뵙고 되돌아오는 길이 내내 편치 않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님께서는 자식의 머리에 백발이 늘어가는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아마 세상의 때(시절)를 짊어진 사람들을 가려서 잘 살펴주려고 표식을 하기 위하여 하늘이 정한 일인 듯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면 될 듯합니다. 어머님께서는 경기가 나빠서 많이 걱정되시겠지만 너무 심려치 마세요. 경기가 잠시 비틀거리는 것도 하늘의 일이라 우려만으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오르막을 힘차게 오르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을 수월하게 내려가면 오르막을 만나듯이 세상은 리듬을 따라 움직입니다..
선택 책을 읽다가어느 순간, 건성으로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책 속에서 어려운 명제를 만나면책을 덮어야 할지,아니면 건성으로라도 읽어야 할지,그것도 아니면,명제를 풀기 위하여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어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할 일이다.차라리 책을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까.그것도 후회를 만들기는 매냥 한 가지다.
북한산 삼천사 계곡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슬기로운 방법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즐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볕더위에 계곡을 찾는다. 연신내에서 향로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더디다. 예사롭게 한 달음에 오르던 길을 중간중간 쉬어갈 수밖에 없다. 쉬어가지 않으면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 향로봉 오르는 중간 못 미쳐서 약수터에서 마음껏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남는 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열기를 식히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서너 번 쉬어서 향로봉 정상에 오르니 혓바닥이 길게 늘어진다. 이런 더위에 산행을 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나마 삼천사 계곡에 몸을 담근다는 기대감이 있으니 버틸만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지쳐가고 길 위에서 단단해져 간다. 산은 육체의 능력으로..
여름날의 隨想 삶이란 때론 진부하기도 하지만한편으로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격동적이기도 합니다.그런 삶에서우리는 늘 삶을 지배하려고 합니다.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욕망을 지우지 못합니다.지극히 인간적인 면이기도 합니다. 나의 울타리에서밖을 내다보면서 행복을 꿈꿀 때도 있었습니다.그때는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던 때문이지요.그러나세월 지나고 보면울타리 안에서나울타리 밖에서도 쉽게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행복이 어디로 숨었을까요.그것은 아니겠지요.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행복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행복그거 별거 아닌데우리는 행복보다는 불행에 익숙해져 있습니다.그러고 보면불행이라는 인자가어쩌면 행복의 씨앗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가진 우리는그것이 아름다움이라..
북한산 백운계곡 무더운 여름을 피하기 위하여 멀리 이동하는 것은 또 다른 무더위에 포위되는 경로일 것이다. 하여 가까운 북한산 백운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더위를 쫓아 여기까지 따라온 마음의 티끌들이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는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낮은 폭포를 이루는 시원한 물줄기가 반겨주고 소나무의 청량한 향기가  손을 내밀어 잡아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갖은 야생화들이 가을을 잉태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 대견하다. 산행할 때마다 힘을 보태주는 친구들이어서 언제나 반갑게 맞는다. 늘 보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덜컥 두려울 때도 있다. 야생화 군락지에 다른 잡초들이 침범해서 군락지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연의 섭리를 에둘러 변호하지는 않는다.  계곡에 발을 담그니 세상..
북한산 인수계곡 단숨에 오르내리던 숨은 벽 능선 오르는 길에서 컨디션 난조를 겪는다. 더위를 먹었는지, 속도 불편하고 발걸음도 무겁다. 지난주에 이어 폭염을 피해 계곡을 찾아드는 길이 고난의 행군이다.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오르면 되는 간단한 해법이 있는데도 굳이 서두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나 자신이 습관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 온몸이 땀에 절어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 계곡을 만나니 물 만난 고기가 된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느긋하게 충전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세포가 되살아난다.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니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여정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의 괴임돌이다. 청담폭포에서 어린아이들 마냥 폭포 샤워를 즐기고 청담계곡으로 들어섰는데, 이정표 없는 갈림..
남한산성 지루한 장마와 폭우를 견뎌낸 성벽은 8월의 강렬한 태양빛에 아물지 못한 상처를 드러내놓고 아픔을 달랜다. 한강과 더불어 삼국시대 때부터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던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처음으로 축조되어 굴곡의 역사를 이어오다가 조선 인조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항상 역사의 중심에서 철옹성 같은 든든함으로 서 있기도 했지만, 때로는 굴욕의 현장이기도 했다. 남문에 올라서면 성남시가 발아래다. 쭈뼛쭈뼛 키 재기하듯 다투던 아파트들이 산성을 지키는 장수의 헛기침 소리를 엿듣는다. 남문 밖으로 버티고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성문을 드나드는 역사의 흔적들을 나뭇잎마다 빼곡하게 적어, 지친 나그네의 시비를 가린다. 이 문을 지나는 나는 어느 나뭇잎에 내 흔적을 새겼다가 언제 누구에게..
북한산 인수계곡 습하고 무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문을 열고 숨은 벽 능선에 올라선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주니 견딜만하다. 산에 오를 때마다 에너지를 완전히 방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산에 오르는 목적을 굳이 채색하거나 따로 포장할 필요도 없이 습관이 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를 방전하여 그릇을 비움으로써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꾼들은 일상에서의 복잡 다단한 스트레스에 널브러진 잔재들을 비워내고 산에 올라 다시 채우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다시 말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뒤틀리고 몸살을 앓는다. 습관처럼 산에 오르면 이유도 없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북한산 구석구석 수없이 다녔지만 아직 미답지가 있었다. 길도 방향도 모르는 계곡길이지만 노련한 산꾼들이 함께 동행하였으니 든든..
세권의 책 인생을 살면서 세 권의 책을 쓸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한 권은 어제의 나를 기록한 책이고, 또 한 권은 오늘의 나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고, 마지막 한 권은 내일의 나를 기록할 책이랍니다. 그런데 이 세 권의 책 중에서 어제의 책과 내일의 책은 내 인생의 참고서일 뿐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어제는 이미 기록이 끝난 나이기에 삶의 큰 지표가 될 수 없으며, 내일의 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꿈꾸고 있을 뿐입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책은 오늘의 책이랍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나는 이미 기록이 끝난 어제의 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막내아들이랑 대수롭잖은 일로 화를 내고 다툰 기억이 오늘의 내 가슴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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