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자식들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쓸려 나가 버리고 빈 둥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외로움만 남았겠지요. 어머님께서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명절이었는데, 꿈에서 본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스치듯 헤어지고 나면 얼마나 허전하시겠습니까. 부모 자식 간에 인연의 정이 아직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일 년에 몇 번 상봉하는 것으로 인연이 정해준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금번 추석에는 증손녀와 첫 상봉을 하게 되었으니 더 없는 기쁨이었지요. 저 역시도 내내 뿌듯했습니다. 더 많은 손주들을 안겨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절이 녹록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저 하늘이 정해주는 대로 인연의 날줄과 씨줄이 맺히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행운이라 생각하고 고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불볕더위를 지나오느라 더 고생이 많으셨지요. 거기에 가뭄까지 겹쳐서 뒷 동네 저수지에는 물이 말라가고 있어서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식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어머님의 마음이 저러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측은해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조만간에 비가 듬뿍 내려서 저수지가 가득 채워지면 어머님 마음도 조금은 느긋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니 슬쩍 미소가 돋네요.
해가 거듭될수록 어머님께서는 거동이 불편해지니 힘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것입니다. 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운동 열심히 하고 계시니 자식으로서는 든든합니다. 어머님을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별일 아닌데도 습관처럼 투덜거렸던 점을 떠올리면 한없이 송구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삭이고 이해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면서 내색을 하지 않겠지요. 자식으로서 어차피 효도는 못할망정 마음 상하게 불효는 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 역시 잘 안됩니다.
어머님!
명절 끝내고 쫓기듯 어머님을 떠나올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대문 밖에서 불편한 몸으로 손을 흔들며 아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먼 산 바라보듯 씁쓸하게 눈시울을 거두시는 모습을 그리며 떠나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은 듯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조만간 또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어 견딜만합니다. 지극히 소박한 자식이라 여기시고 다음 만날 때까지 식사 잘 챙겨드시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추석이 지났지만 아직은 낮 더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낮에는 가급적 바깥출입을 자제하시고 해거름에 운동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2024년 9월 18일 추석.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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