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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溪遊錄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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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날개를 접는다.

 

며칠 전 설악 용아에서 앞선 사람의 뒷걸음질에 손가락이 밟혀 골절을 당하여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가을 시즌에 산행과 마라톤이 계획되어 있어서 스케줄이 빠듯하지만, 자연이 잠시 쉬어 가라는 처방을 내려 무릎을 꿇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은 아픈 손가락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초 봄에, 소 꼴을 베려고 풀을 잡고 낫으로 베었는데 잘리지 않고 뿌리째 뽑혀서 달려 올라왔다. 흙이 붙어 있는 뿌리만 추려내려 낫으로 치다가 왼쪽 네 번째 손가락 두 번째 마디를 내리쳤다. 처음에는 피도 나지 않고 뼈가 허옇게 보였다. 엄청난 통증을 견뎌내며 쑥으로 지혈을 하고 집에 왔는데, 아버지께서는 병원 갈 생각은 않고 담배가루를 붙이고 헝겊으로 싸매 주셨다. 병원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던 환경이라 그대로 나을 때까지 버텼는데, 나중에 보니까 손가락 마디가 조금 삐뚤어졌다. 

 

2015년 10월,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날머리를 가야동계곡으로 방향을 잡고 하산하던 중, 가야동 계곡 끄트머리 개울 바닥에서 잠시 쉬었다. 산행을 이어가려 일어나려는데 디딤돌 돌멩이가 살짝 흔들려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순간 넘어지지 않으려 몸을 비틀었다. 오른손에 들고있던 카메라를 놓지 않으려 하다 보니 왼손에 체중을 실어 개울에 있는 돌멩이를 짚었다. 짚는 순간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손이 아프기보다는 뭔가 허전했다. 속초 의료원 응급실 진료 결과 왼쪽 네 번째 손등 뼈가 세 가닥으로 골절되었다. 강남에 있는 수지전문 병원인 강남수병원에서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신경이 거슬리는 느낌이 있다.

 

금번에 왼쪽 네 번째 손가락 첫마디가 골절을 당했으니, 나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은 세 번씩이나 다쳤다. 일생에 한 번만 아파도 아픈 손가락인데 세 번씩 다쳤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보살피고 관리해야겠다. 포근하게 격려하고 위로를 보낸다. 

 

[수술 일시] 2024년 10월 14일

[수술 병원] 서울연세병원

[수술 시간] 1 시간

[마        취] 전신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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