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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산,가지산 영남알프스를 종주했던 17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가지산과 운문산을 다시 만난다. 긴 산행 길을 버텨내며 탈진한 상태에서 마지막 힘을 모아 가지산과 운문산을 올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영남알프스는 울주, 밀양, 청도, 양산을 아우르며 1,000미터 넘는 고산준봉들이 시위하듯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가지산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지산 정상에서 세상을 품어 안는 맛은 천하일미다. 가파른 가지산의 등로를 힘겹게 올라 잠시 호흡을 고르며 둘러보는 세상은 온 천지가 산이다. 척박한 산세를 기둥 삼아 삶을 이어왔을 조상들의 숨결이 연한 산그리매에 겹겹이 쌓여있다. 영남알프스는 설악산과 같이 웅장한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절경은 없다. 지리산처럼 푸근하고 넓은 품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넉넉함만..
78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결승전 "너나 마니스사 파이야무야 너나 마니스사 파이야무야 ~헤이 에세세 양만세 양만세! 우리 대구상고 야구선수야 오늘도 싸워서 이겨왔구나 내일의 승리의 월계관이다 ~헤이 에세세 양만세 양만세!" 설렘과 기대감으로 대구상고에 입학하여 첫 음악 시간에 교가보다 먼저 배웠던 야구응원가 '너나 마니스사 파이야무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로 구성된 응원가를 목청 돋워 외치며 야구장을 들락거렸던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졸업을 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가슴에 지문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던 '너나 마니스사 파이야무야'를 꺼내 들고 설렘으로 흥얼거리며 야구장을 찾았다. 아마 45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준결승전에서 강릉고를 제압하고 결승전에서 덕수고와 맞붙게 된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총동문회 및 재경 ..
지리산 종주(18)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시지 마라' 했거늘 나는 견딜만하지 못하여 다시 지리의 산문을 연다. 고행길 같은 산행을 할 때마다 힘들어하면서도 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냥 내 삶의 길이려니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견뎌낼 뿐이다. 새벽 3시 성삼재의 바람은 언제나 그랬듯이 얼씨년스럽다. 흐릿한 하늘에는 별들이 총기를 잃어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견한다. 가쁜 숨을 몰아 땀 한 줌 짜내며 오른 노고단의 공기도 만만치 않다. 울퉁불퉁한 밤 길을 손 전등에 의지해 걸음을 재촉한다. 산 길 30km 이상을 걸어야 하니 마음도 바빠 여유가 없었지만, 숲이 내어주는 달콤하고 신선한 공기가 위안이 된다. 삼도봉에 이를 즈음에 여명이 열..
[時論]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 단상(短想)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버킷리스트라 함은 평생 한 번 해보고 싶은 일, 또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면에서 버킷리스트는 개인의 인생에서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버킷리스트를 실행함에 있어서 개인의 열정과 숭고한 가치가 이입되어야 그 본연의 의미를 오롯이 품을 수 있을진대, 최근에 버킷리스트의 의미를 희화한 일이 발생해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 칼럼과 관련해서 중앙일보 남정호 논설위원은 청와대 측으로부터 김정숙의 외유성 해외순방 행태를 비판하였으며, '외교상 방문지 국가의 요청과 외교 관례를 받아들여 추진한 대통령 순방 일정을 ‘해외유람’으로 묘사'..
과천마라톤(Half-37) [마라톤은 배려다]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다. 마라톤을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날씨였다.섭씨 28도를 상회하는 뜨거운 태양을 호흡하며 달린다는 것은 무리다. 결승점 2km 전방쯤에서 앞서 달리던 아가씨가 울부짖다시피 악을 쓴다.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금방 쓰러질 것 같은데도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 어떻게 좀 도와주고 싶은데 특별히 도와줄 방법이 없다. 1km 정도 그의 리듬에 맞춰 함께 달렸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곧장 잘 따라와 주니 내심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나 자신이 힘들어 격려와 응원의 말을 전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마라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기 위한 상생의 수단이다. 극한의 고통에서는 경쟁에 의한 승부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함께 달리고, 서로 격려..
계양산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움이다.친구를 만나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계양산에 오르자고 약속을 하고 산문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핑계를 내놓는다. 무릎에 물을 빼서, 발목에 통풍 치료를 받고 있어서 산행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둘레길이나 걷자고 한 바퀴 도는데, 흐린 날씨에 바람이 많은데도 사람들이 많다. 인천 시민들이 산 향기를 맛보며 호흡할 수 있는 쉼터인 셈이다.  알프스처럼 경관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나누기에는 계양산행도 모자라지 않다. 산행은 언제나 마음을 젊어지게 하는 묘수다. 친구들아! 무릎이 아프다고 움츠리지 마라. 아플수록 더 열심히 걷기를 추천한다. 연습만이 대가를 만드는 지름길이란다.  장미 향기가 진득한 푸른 계절에 ..
지리산 서북능선 성삼재에서 노고단과 반대 방향으로 산문에 드니,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강풍이 불어 산행의 긴장감을 더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일기라 대수롭잖게 여겨 옷을 가볍게 준비했었는데 실수였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한기를 떨치려 앞만 보고 허겁지겁 걷는다. 오르막 길에도 쉬지 않고 어두운 밤길을 헉헉대며 땀방울이 맺히도록 걷다 보니 다소 안심이 된다.  북두칠성, 전갈자리 등 별들이 초롱초롱한 깜깜한 밤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무슨 근심을 떨치려 입산하는 것일까. 각자 저마다의 아픔이나 근심이 있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꾹꾹 눌러 담고 산에 들면 신기하게도 세상 번뇌를 잊어버리는 맛에 중독된 사람들일 게야. 그래서 산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걸음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서북능선 길도 ..
啐啄同時줄탁동시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올 때, 병아리는 안에서 쪼고 어미는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야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의 '줄탁동시'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서로 인연이 잘 맞거나 알맞은 때에 찾아온 기회를 잘 포착하는 걸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손녀가 백일을 맞아 첫 뒤집기를 시도한다. 혼자서 방을 빙빙 돌며 끝까지 용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함을 느낀다. 거의 다 뒤집었다 싶었는데 마지막 팔을 빼지 못해 원위치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짠하다. 다시 포기하지 않고 낑낑거리며 시도하는 모습을 보며 응원을 보낸다. 나중에는 힘이 빠지니까 좀 쉬었다가 다시 뒤집기를 시도한다. 손녀는 이번 기회에 꼭 껍질을 깨고 나오겠다는 각오다. 그에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대수롭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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