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지 16년이 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행복한 마라토너 김기옥 님은 풀코스 500회를 완주하셨으니 지구 반 바퀴를 달렸습니다. 함께 하는 동안 저는 아직 50회를 채우지도 못한 채 헉헉 대고 있는데, 500회라니 상상할 수도 없는 대기록입니다.
50대 초반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칠순에 入神의 경지에 도달하셨습니다. 아직 달리기를 멈출 기색이 없으시니 지구 한 바퀴를 다 채워야 직성이 풀리시려나 부럽기도 하지만 은근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수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수십 개의 발톱에 실어 보낸 번민을 되내어 봅니다. 백두산 천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땀과 하늘에 닿아도 여분이 남을 만큼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500회 완주 기념 수건을 받아 들고 가만히 가슴에 대어 봅니다. 나에게는 끈기와 열정을 염원하는 부적이 되었습니다. 세상 살면서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이 수건을 목에 걸고 씩 웃어 보겠습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아름다운 열정을 새기며 행복을 배우겠습니다.
지나 온 500회 보다 남은 500회가 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조바심 내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지구 한 바퀴를 달렸던 기록을 새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무리하지 말기를 간청합니다. 자칫 우리는 숫자의 함정에 함몰되어 자신을 망각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 나섰다가 불행을 만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달림 이로서의 행복은 이미 채우고도 덤이 남습니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 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딱 한 번만 더 달릴 수만 있다면 더 없는 영광입니다.
겸손한 마라토너 김기옥 님!
500회 완주 기념으로 함께 달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길 위에서 주저앉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 잃지 않기를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일 시] 2024년 6월 30일
[장 소] 양재천 일원
[기 록] 2시간 06분(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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