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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라 톤

2024 국제평화마라톤(Half-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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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시작한 지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얼떨결에 입문했던지라 객기에 몇 번 참가하고 말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느덧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쇨 때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매번 달릴 때마다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반문하지만, 그때마다 명확한 답변이 있다. 길에서 쓰러질 때까지 나는 달린다.

 

국제평화마라톤은 강남구와 미 8군이 협력해서 주관하는 대회다. 무엇보다 대회의 취지가 참 멋지다. 대회 참가비 전액을 불우이웃 및 자선단체에 기부를 한다. 올해는 8,500명이 넘는 마라토너가 참가했으니 기부금도 두둑해져서 달리는 사람으로서 간접 기부한 느낌이 들어 괜스레 기분이 으슥해진다. 

 

가을빛이 따사로운 양재천을 달리는 걸음이 가볍다. 수없이 연습하고 달렸던 길이라 조금은 익숙한 느낌이 심리를 편안하게 한다. 동네 주민들이 산책 나왔다가 마라토너들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고 응원을 보내주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가끔은 수줍어서 나지막이 내뱉는 응원에 귀를 쫑긋 세우면 더욱 힘이 난다.

 

10km 지점 조금 지나서 앞에서 달리던 마라토너 한 분이 쓰러졌다. 서너 사람이 응급조치를 위해 둘러서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얼핏 보기에 마비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조치하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 수습해야 될 텐데 생각하며 양재천과 탄천 갈림길인 12km 지점에 다다르니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왜 구급차가 대응하지 않고 있지' 생각이 들어 달리다가 말고 차로 다가가서 '1km 후방쯤에 사람이 쓰러졌는데 연락 없었어요?' 물었더니 연락이 없었다며 알아보겠다고 했다. 다시 가던 길을 달리려고 주로 에 들어서는데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마라토너들이 달릴 때에는 전화기가 없으니 빠른 연락이 안 되어서 안타까운 시간이 지나가는 듯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달렸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진작 그 생각을 했더라면 전화기로 빠른 조치를 해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영 찜찜했다. 

 

흔히들 마라톤을 육체의 한계를 넘는 운동이라 말한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육체의 한계를 넘나들며 버텨내는 일은 결국 영혼을 담금질하는 행위이다. 부디 쓰러진 마라토너도 거뜬히 잘 회복해서 더욱 견고하게 영혼을 담금질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의 안전한 회복을 기원하며 마라톤을 마친다. 

 

[일    시] 2024년 10월 3일

[장    소] 코엑스, 탄천, 양재천 일대

[기    록] 1시간 55분 7초(H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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