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배려다]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다. 마라톤을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날씨였다.
섭씨 28도를 상회하는 뜨거운 태양을 호흡하며 달린다는 것은 무리다. 결승점 2km 전방쯤에서 앞서 달리던 아가씨가 울부짖다시피 악을 쓴다.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금방 쓰러질 것 같은데도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 어떻게 좀 도와주고 싶은데 특별히 도와줄 방법이 없다. 1km 정도 그의 리듬에 맞춰 함께 달렸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곧장 잘 따라와 주니 내심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나 자신이 힘들어 격려와 응원의 말을 전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마라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기 위한 상생의 수단이다. 극한의 고통에서는 경쟁에 의한 승부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함께 달리고, 서로 격려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인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라톤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7년 12월 10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BMW 댈라스 마라톤 대회'에서의 일입니다. 여성부 1위로 달리고 있던 뉴욕의 정신과 의사인 '첸들러 셀프'가 결승선을 고작 183m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다리가 완전히 풀린 '첸들러 셀프'는 더 이상 뛰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이때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던 2위 주자에게는 우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2위를 달리고 있던 17세의 고교생 '아리아나 루터먼'은 '첸들러 셀프'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며 함께 달리기 시작합니다. 의식을 잃다시피 한 '첸들러 셀프'는 몇 번이나 쓰러지지만 '아리아나 루터먼'은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앞에 있어요." 라며 끊임없이 격려하며 함께 달립니다. 그리고 결승선 바로 앞에서 '아리아나 루터먼'은 '첸들러 셀프'의 등을 밀어 그녀가 우승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미국 국민들의 시선은 1등을 한 '첸들러 셀프'에게도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냈지만, 그보다 17세 소녀 '아리아나 루터먼'의 위대한 배려심에 더 큰 환호와 찬사를 보냈습니다. 지구촌에서 함께 공존 공생하는 인류에게 이렇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 소녀의 따뜻한 마음을 잠깐 제 가슴에 담는 것만으로도 더 없는 영광입니다.
진정한 승부는 경쟁이 아니라 상생입니다.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경쟁에서 꼭 이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도 다시 달릴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첸들러 셀프'와 아리아나 루터먼'의 마라톤 영상을 남깁니다. 꼭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https://youtu.be/sbXy2vkJxSk?si=ctTcVZyFLld0WFNo
[일 시] 2024년 5월 19일
[장 소] 과천문원체육시설 및 양재천 일대
[기 록] 2시간 2분 32초(H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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