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오산종주를 두 번 정도 했었는데, 할 때마다 체력의 한계를 느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덮은 지가 10년은 족히 되었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을 연계해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겠다는 잠재워 둔 욕망에 친구가 불을 지폈다. 강북오산종주 산행을 함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수사도북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우리는 난이도가 더 많은 북도사수불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금요일 밤 11시에 불광동 장미공원을 출발하여 대장정을 시작한다. 서울 시내의 불빛들도 졸려서 하나 둘 잠기고 구름사이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가늘게 뜨고 있다. 산길에는 둘의 발자국 소리만 선명한데, 정적을 울리는 소쩍새가 밤새도록 슬피 울어댄다. 소쩍새의 열정적인 구애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북한산을 넘어와서 우이동에 도착할 무렵 빗길에 산행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갈등이 많은 새벽에 컵라면과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니 다시 걸을 힘이 생긴다.
도봉산을 오르는 길에 비가 제법 내린다. 비를 흠뻑 맞으며 삶의 여정을 여며 본다. 깜깜한 밤에 나는 왜 인기척 하나 없는 산 길에서 비를 맞으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일까. 무엇을 얻고 무엇을 비워낼 것인가. 혹시 일출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했었는데 비가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우이암에 이를 무렵 비가 잦아들고 아침이 열리기 시작한다. 도봉산 능선에서 사패산을 이어가는 길에서 구름에 휩싸였다 벗었다 꽃단장을 하는 북한산의 환상적인 조화에 잠시 피곤함을 잊는다.
사패산에서 호암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에 피로가 겹치고 졸리다. 30km 만 걷고 산행을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스며들어 살짝 흔들린다. 그때 노란 인형이 눈에 띄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가섰다. 나에게는 언제나 행운의 상징이었던 망태버섯이다. 여기서 당신을 만나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잠시 회포를 푸니 그동안의 피로가 지워진다. 다시 산행을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을 얻는다.
의정부 시내를 통과하는 구간에서 순댓국에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켜 에너지를 채우고 구름이 걷히는 수락산으로 향한다. 수락산에서 불암산 이어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가파른 봉우리들이 연신 이어져 끊임없이 올라야 하는 계단 길에서는 욕이 나온다. 불수사도북 방향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꾸 돼 내어진다. 피로가 극에 달하고 졸음이 지쳐 헛발이 디뎌진다. 무리했다가는 자칫 사고를 당할 수 있겠다 싶어 불암산에서 하산하는 길에 벤치를 찾아 잠시 눈을 붙였다. 다시 눈이 맑아졌다.
좀처럼 길이 줄어들지 않는 막바지 산행 길에 많이 지쳤다. 함께한 친구에게는 탈진 증세까지 더해졌다. 이 험난한 길을 왜 우리는 이렇게 무리한 줄 알면서도 결행했을까. 분명하게 내놓을 만한 답은 없다. 인생길에서 잠시의 이벤트였으니 호기심 많은 우리들은 지나치지 못하고 기웃거렸을 뿐이다. 토요일 오후 4시 47분 상계역에 다다르 대장정을 마무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대견함의 인정서를 겸연쩍게 내민다. 땀에 절은 바지에 사타구니가 벌겋게 쓸리고 별난 주인을 만나 물집이 잡히도록 고생하는 발에게 송구함을 전한다.
[산행 일시] 2024년 6월 15알
[산행 경로] 불광역 - 북한산 - 도봉산 - 사패산 - 수락산- 불암산 -상계역(44km)
[산행 시간] 17시간 53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