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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신 인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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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복제 연구 성과가 생명공학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인류의 탄생 이래로 최대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위 신의 영역에 한 걸음 더 접근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윤리적 저항에 부딪혀 지속적인 연구와 상용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명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민법은 태어난 이후부터를 생명이라고 주장하고, 형법은 수정 후 8주부터 생명으로 인식한다. 더 넓게는 종교적인 인식에 따라, 민족적 특성에 따라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인식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 시작점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생명공학자들의 줄기세포 연구는 윤리적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한 생명공학 연구팀은 배아복제줄기세포 연구성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윤리적 저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체세포 핵이식 복제방식으로 줄시세포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한다. 앞으로 과학적, 기술적, 윤리적 난제로부터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야겠지만, 일단 불치병과 난치병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연구결과에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있을까.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이해가 합의된 성체줄기세포 복제 기술을 완성하여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하고, 고통받는 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 때,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환자들을 양산하는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부모님이 물려준 모습과 습생, 성격을 자연의 섭리로 알고 아무 장애 없이 살아가지만 줄기세포 복제기술이 일반화되는 시대에는 키 작은 환자, 뚱뚱한 환자, 삐쩍 마른 환자, 코가 낮은 환자, 눈이 찢어진 환자, 손가락이 짧은 환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환자, 눈동자가 갈색인 환자, 가슴이 작은 환자, 성격이 모난 환자, 공부를 못하는 환자 등, 지금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 속에 자신임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성형문화가 발달하면서 예쁘지 않아 사회활동에서 경쟁을 상실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장애인이 되어가고 있다. 장애 아닌 장애를 탈피하기 위하여 잠재적인 성형수술 대기환자가 됨으로써 엄청난 성형 장애인 환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도 충분히 건강하고 예쁜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장애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적 풍토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철학적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고서는 개선의 여지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성체줄기세포 복제 기술이 보편화되는 미래의 어느 날, 일부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연국가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기 위한 끔찍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려해 봐야 한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생명공학 연구팀은, 하나의 결과를 얻기 위한 연구가 인류의 불행을 자초화는 단초를 만드는 건 아닌지 사려깊이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줄기세포 복제 기술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일 수 있다.

 

최근 영국의 한 생명공학 연구팀에서는 인간의 모습과 기능을 선택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냈다. 즉, 파란 머리를 가진 아이가 외모도 반듯하고, 머리는 명석하며 암 유전자를 배제시켰기 때문에 평생 암에 걸릴 위험도 없는 완전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인류의 탄생이다.

 

개인적으로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피조물들에 의한 반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자신의 결함을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인간들을 향해 박수를 쳐 주실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또 다른 재앙을 준비하고 계실까. 

 

이 시점에서 생명공학 연구팀의 성과와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들의 시도와 노력이 자연을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망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인간이 행복을 인위적으로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이상의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는 진리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수필집 [파고만댕이의 여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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