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운동을 즐겨하는 친구여서 뇌졸중으로 쓰러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으면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의 범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건강을 위하여 수영을 꾸준히 했던 친구는 혈압이 정상적으로 관리가 되어 혈압약을 끊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다니던 수영장이 임시 폐쇄에 들어가면서 수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술과 담배는 그대로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고 건강관리에 소홀했었다.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친구는 어느 날 자다가 눈을 뜨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낮에 발생했다면 119에 전화를 하여 도움을 청했을 터인데, 자는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뇌경색이 일어났던 터라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다. 자기 고집이 센 편이고 자존심이 강했던 친구는, 순간 반신 마비가 된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마비가 되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하여 한없는 자책을 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이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마비가 된 오른쪽 팔목에 칼을 대었다. 피가 많이 났지만 금방 지혈이 되었다. 다시 한번 칼을 그었는데도 본인 의도와는 다르게 빠른 시간에 지혈이 되었다. 그래서 친구는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단념하고 자식들한테 연락을 해서 병원에 입원하여 5년째 재활을 하고 있다. 워낙 고지식하고 자기 고집이 센 친구여서 죽을 각오로 재활치료와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이제 지팡이 짚고 다닐 정도는 되었다.
병문안 가서 함께 돼지 김치찌개 전골을 시켜놓고 외식할 정도가 된 것만으로도 참 다행한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들러 옛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이제는 부담이 없다. 그동안 사소한 우정을 나누는 일도 조심스럽고 쉽지 않았던 점을 상기하면, 불행 중에서도 이 정도면 행복이다.
병원 근처에 로또 명당이 있어 로또복권 3매를 구매해서 행운을 빌며 하나씩 나눴다. 당첨되면 1/n씩 나누자며 환하게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런데 친구는 아직 병원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동안 병원 비용 부담하느라 가진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으니 당장 병원을 나오면 거처 마련도 고민이 되고, 혼자 생활하는 게 자신이 서질 않는 눈치다. 친구로서 별 다르게 도와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병원이 서대구 역 근처여서 돌아오는 길에 염색단지 석탄화력 발전소 굴뚝을 올려다본다. 몇 년 전에 제가 경영하던 회사에서 공사를 한 현장이라 남달리 애정이 간다. 랜드마크라 여기고 열정을 쏟았던 곳이어서 경부선을 타고 지나칠 때마다 시선을 맞대면 가슴이 뛴다. 이제 영화는 간 곳 없고 역사만 남았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친구야!
지금의 고통은 과정일 뿐이다. 인고의 세월을 잘 견뎌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발맞춰 걸을 날을 기다린다.
힘내자!
[일 시] 2024년 12월 14일
[장 소] 경대재활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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