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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溪遊錄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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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끝, 서둘러 돌아설 때마다 명치가 찡해옵니다. 뒷 설거지를 채 마무리하기도 전에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휘고 뒤틀어진 손을 뿌리치는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익숙해진 습관이어서 그때뿐입니다.

서둘러 떠나야 할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은 제 생활의 패턴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욕심을 부리는 탓일 것입니다. 그러니 효도는 무슨 효도를 하겠습니까. 어머님 마음 뻔히 알면서도 헤아리지 못함을 용서 바랍니다.

지난 연말에 찾아뵈었을 때, 얼굴빛이 어둡고 더 야윈 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님과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반찬 신경 쓰지 않고 된장찌개 끓여 밥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살아오신 시집살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았지만, 어머님 당신이 힘들었다 하면서도 옛일을 회상하면서 무엇이든 다 이야기해 주고 싶은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더 좋았습니다. 비록 두 밤을 함께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자식 둘을 유산으로 먼저 잃게 된 사연을 말씀하실 때, 그 아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하니 가슴에 담아도 울컥해서 담기지가 않습니다.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시집에서의 격한 노동으로 인한 유산이었다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요즘 같았으면 가당치도 않는 일인데, 그때는 그러려니 받아들이셨다니 감당하지 못할 서러운 아픔입니다. 

 

이번 설날에 뵌 어머님은 좀 더 불편해진 거동이 시선을 흔듭니다. 방바닥에서 일어서기가 만만치 않아 기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증손녀를 떠올립니다. 증손녀를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많이 기다렸을 텐데, 눈이 많이 와서 뵙지 못하게 되어 서운한 감정을 툭툭 내뱉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들 내외에게 일러 조만간에 한 번 다녀가라고 일러두겠습니다. 

 

어머님!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가까이 가겠습니다.

올해 봄 되면 가려했는데, 일이 만만치 않아 늘어지게 되었습니다.

머잖은 시간에 함께 웃고, 알콩달콩 다투기도 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    시] 2025년 1월 30일
 

수야지
수야 3리 버스정류소
수야지 너머 삼성산
남산,화악산
용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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