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에 내렸던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의 무참히 꺾인 상흔들이 널브러져 있어 안타깝다.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을 지켜온 기개는 간데없고 등 그러니 홀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지나온 나 자신을 반추해 본다.
한 때는 세상을 구하겠다며 결기 있게 나섰던 적도 있지만, 세상 풍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쓸려갔던 지난날. 원자력 발전소 사업을 중단한다는 쓰나미 속에 부지깽이 하나라도 건져 보겠다며 거품을 물고 버텼지만, 결국 지푸라기 하나도 잡지 못했던 안타까움에 원망인들 왜 없었겠냐만은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목숨만 겨우 건져 햇볕에 말려 꾸덕꾸덕 숨 쉴만하니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하다. 어느덧 공포의 숨결이 잦아드니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허리가 잘리고 목이 꺾인 소나무들 중에 다시 재생할 수 있는 나무들도 있겠지만, 설령 재생이 된다 하더라고 옛 영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자연의 순리가 그러한 것을. 차라리 이 참에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겨 단순하고 욕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자.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남한산성을 쌓고 딱 한 번 전쟁을 치뤘는데, 그 전쟁이 패전이었다는 기록이 말해주듯 세상의 일은 인간의 의지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제 갈 길 대로 갈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거꾸로 가는 길이든, 제대로 가는 길이든 시비는 의미 없다. 길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산행 일시] 2024년 12월 28일
[산행 경로] 남한산성 입구역 - 남문 - 동문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오금역(14.5km)
[산행 시간]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