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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라 톤

서울신문 마라톤(Half-45)

[페이스메이커]

 

기록을 따라다녀서는 지치기만 할 뿐 따라잡을 수 없다. 기록은 인간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점에 목표를 정해놓고 그 지점에 닿으면 기록은 또 저만치 앞서 있다. 그러므로 기록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하며 나의 곁을 지켜주는 증표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한 발 한 발 딛다 보면 어느새 기록이란 보상이 주어질 뿐이다. 

 

첫 하프마라톤에 도전하는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 나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했다. 더운 날씨에 어떻게 레이스를 이끌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15km 이후 걷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초반 5km를 7분/km로 달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예상외로 잘 따라와 준다. 급수대에서 초반 달리기로 들떴던 호흡과 근육을 물과 이온 음료로 차분히 달랬다. 첫 대회이니만큼 기록보다는 끝까지 완주가 목표다. 5km 지나서는 6분 30초/km로 페이스를 이끌었다. 15km 지나니 기온이 오르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페이스도 약간 주춤한다. 러너들의 상태를 살피지 않고 그냥 달리게 되면 순간적으로 걷고 싶은 욕망에 유혹될까 봐 레이스를 조절했다. 18km까지 페이스가 크게 처지지 않고 잘 버텨준다. 완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18km부터는 페이스를 의식하지 않고 발 가는 대로 달렸다. 막바지 오르막 구간에 접어들자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끝까지 걷지 않았다. 마지막 1km 남겨놓고 셋이서 함께 스퍼트했다. 축 처진 사람 들을 빠른 속도로 제치며 달려가니 응원 나온 사람들이 환호해 준다. 올림픽 결승선에서 선두로 운동장에 들어서는 기분이 이럴까.

 

마지막까지 걷지 않고 말 그대로 완주할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레이스였다. 완주完走란 단지 결승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완전하게 달린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레이스는 성공이다. 

 

첫 하프마라톤 도전이라 할지라도 막연하게 2시간 20분 정도의 기록을 의식한 것은 사실이다. 기록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목표 설정은 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기록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끝까지 걷지 않고 달려 자신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다 보면 환경과 컨디션에 따라 기록은 결정될 것이다. 그 기록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진정한 마라토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두려움을 안고 달렸을 아들은, 무사히 해냈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표정으로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싱글벙글한다. 첫 하프마라톤 완주를 축하하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아 무사히 완주를 도울 수 있었던 나 자신에게도 자축한다. 무엇보다 함께 달릴 수 있어서 행복이다. 

 

[일시] 2026년 5월 16일

[대회] 서울신문마라톤대회(상암동, 한강 일원)

[기록] 2시간 24분 32초

 

가양대교
개그맨 곽범과 함께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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