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의 상견례]
강남구 수서동에 조선조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묘소가 있다. 그곳에 터 잡고 600년 동안 이어온 전주 이 씨 광평대군파의 종택 '필경재'. 종가의 후손이 종택을 고급 한식집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상견례 장소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큰 아들 상견례도 이곳에서 했는데, 막둥이도 두 달 전에 상견례 장소로 예약했다. 수서역에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한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고풍스러운 한옥과 잘 어울리는 정원은 도심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이다.
요즘 상견례는 예전의 약혼식만큼이나 무게감 있는 절차로 여겨진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풍습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혼주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준비했지만, 최근에는 결혼 당사자들이 직접 사소한 것까지 모두 준비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혼주들 입장에서 편한 부분도 있지만, 뒷방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씁쓸한 분위기를 감내해야 한다. 한때 결혼식은 혼주의 의례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결혼 당사자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친구 A는 자신의 아들이 대뜸 "10월 어느 날, 결혼식 하려고 예식장 예약했는데 문제없으시죠?"라고 통보해 왔다. 문제는 아직 며느리 될 사람과 인사도 하지 않은 상태라 어안이 벙벙했다. 앞뒤 가릴 틈도 없이 진행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상견례 절차도 없었다. 서운함을 꾹꾹 눌러 받아들여야 하는 사정이 속상할 뿐이다. 여생을 두고 못내 아쉬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1995년 삼 남매 중 막둥이가 태어날 당시, 산아제한 정책이 시대를 관통하던 때였다. 아이를 순산하고 병원비를 치르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박봉으로 생활하던 때라서 병원비 부담이 꽤 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까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법적인 제도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 년 지나서 셋째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었다. 오늘날 아이가 모자라 출산장려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도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30년 지나 고집 센 막둥이의 결혼을 위한 상견례 자리에 서니 감회가 남다르다. 울며불며 키웠던 사정은 간데없고, 의젓하고 든든하게 자라 독립하겠다니 부모로서는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 며느리 될 사람이 무남독녀 외딸이어서 적잖이 신경 쓰이기는 하겠지만 아들이 잘 처신할 것이라 믿는다.
사돈 내외도 평범하게 살아온 분들이라 거리가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다만, 귀한 딸 공주처럼 애지중지 키워서 독립시키려니 얼마나 힘드실까. 딸이 떠나고 텅 빈 둥지를 사위가 얼마만큼 채워낼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점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정을 주고받으며 마지막까지 집을 지켰던 막둥이가 독립하고 나면 집이 텅 빌 것이다. 분명 허전하겠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밭이 비어 허허로우면 야생화가 필 것이다.
서로 서먹한 자리라 어색하지만, 덕담을 나누며 예식에 필요한 절차 몇 가지 의견 교환했다. 서로 자라 온 환경이 다른 만큼 자잘한 다툼도 있겠지만, 아무쪼록 돈독한 사랑 나누며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비와 바람을 견뎌내고, 햇볕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사랑과 믿음으로 잘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일시] 2026년 5월 9일
[장소] 필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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