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桃溪遊錄

설악산 캠핑

[설악에 걸어 둔 감성 한 조각]

캠핑은 감성을 채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문화지만, 여전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먹을 것만 조금 준비해서 깔끔하게 다녀오는 펜션과 비교하면 선뜻 내키지 않는 걸음이다. 최근에는 유행처럼 번지던 펜션 문화가 시들해지고 캠핑이 유행을 이어받아 성업 중이다. 자연휴양림이나 명성 있는 캠핑장에는 예약이 쉽지 않을 정도다. 이곳 캠핑장도 한 달 전에 예약 개시하자마자 득달같이 덤벼들어 얻어걸린 것이다. 설악산 단풍 절정 시기라서 더 귀한 티켓이다.
 
낮 시간에 폴란드 친구들과 주전골 트레킹 다녀와 허기진 상태에서 캠핑장에 들어섰다. 아들과 사위가 미리 텐트 치고 준비했던 터라 숯불 피우고 돼지고기 바비큐 구워 먹기만 하면 된다. 폴란드 친구들이 가족들마다 간단한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나라는 각 개인별 선물보다는 가족에 대한 선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개인별로 눈맞춤 하면서 소품을 선물하는 모습이 자잘한 정감을 쌓기에는 더 좋은 것 같다. 그들이 사전에 가족 정보 입수해서 일일이 선물 준비했던 마음을 생각하니 감성 캠핑에 더 멋진 감성이 얹혀진다. 
 
그들은 신기해하며 연신 사진을 담는다. 우리나라 캠핑문화는 아주 집을 통째로 옮겨와 자연에 걸쳐놓고 걸쩍지근하게 먹고 마시는 풍경인데 반해, 유럽 쪽은 간단하게 피크닉 하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술과 고기와 모닥불을 벗 삼아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불멍을 즐겼다. 불편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좋은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심이다. 주전골 트레킹 마치고 오색약수터 건나물 가게에 들러 고사리 샀던 파란 눈을 가진 '고시아'에게  여쭸더니, 육개장 끓일 재료로 구매했다고 한다. 참 신기하면서도 기특한 경험이다. 어떻게 육개장을 경험했길래. 그 맛을 자신이 연출해 보고 싶은 욕망이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가 힘들면서도 고마운 감정이 든다.
 
취기가 얼큰하게 올랐을 때, 낮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꺼냈다. 주전골 트레킹 하다가 '유스티나'가 몸이 불편해서 딸과 함께 먼저 하산했다. '유스티나'는 올해 초 폴란드 여행 갔을 때, 그의 집에서 이틀 밤 자고 먹고 신세 졌으니 예사로운 인연은 아니다. 문제는 통역을 맡았던 딸이 가버리니 소통문제가 난감했다. 나와 아내, 그리고 '고시아', '이르미아' 넷이서 트레킹을 이어가면서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서 소통해 보니 쉽지 않다. 간단하게 물건을 구매하거나 인사하는 정도는 문제가 없는데, 풍습이나 서로의 관심사를 소통하는 데는 AI 번역 능력이 아직 미숙하다. 그래서 낮에 궁금했던 점을 다시 꺼내 정상적인 소통을 하며 배꼽을 잡았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 묘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던 소통이 너무 쉽게 해결 돼버리니 허무하다. 말하자면, "말 알아듣겠어요?" 이런 질문을 AI에게 하면, "Horse...." 이런 식으로 번역을 하니 서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을 수밖에.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 내며 타들어 가는 설악의 밤은 웃음에 실려 향기를 더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별빛을 감춘다.  그들은 내일 일정이 있어서 숙박을 하지 않고 밤에 떠나는 스케줄이다. 분위기가 좋아 도수 높은 위스키를 몇 잔 연거푸 마셨더니 취한다. 그들을 배웅하면서 약간 비틀거렸다. '유스티나'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부모님과 언니 마르타에게 안부 전해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그들을 배웅했던 기억을 게워내지 못해서 난감했다. 그 부분 필름이 끊겨있다. 딸에게 전화해서 "실수한 것 같아 양해 구한다"고 하니, "실수한 거 없다"고 한다. '유스티나'에게 안부 전해 달라고 하니, 어젯밤에 열 번도 넘게 했다고 한다. 술이 원수여?. 내가 원수지!.
 
이번 캠핑의 출발은 가족 캠핑이었지만, 폴란드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캠핑의 감성을 제대로 살렸다. 이 정도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캠핑이라면 좀 번거롭고 불편하더라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일반 식당에서 한국 음식 대접하고 뻔한 이야기 주고받는 응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성을 자극하는 뭔가 있다. 그 뭔가 가 뭔지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기꺼이 좋은 감성으로 흔쾌하게 받아준 폴란드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오아시스 정글 캠핑장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있다. 캠핑장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온천욕 이용권을 준다. 캠핑장 안에 위치한 '필례온천'은 해발 700미터에 위치한 아주 작고 낡은 건물이다. 이곳에는 수건도 없고 샴푸도 없다. 달랑 비누 한 장만 제공한다.  수질, 온도 등 평가에서 우리나라 3대 온천에 들 만큼 우수하다고 한다. 특히 게르마늄 성분 함유량이 세계에서 두 번 째라고 한다. 이런 보물 같은 온천이 설악산 깊은 산속에 숨어서 아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그들만의 아지트다. 이곳을 이용하는 외부 고객들이 셔틀버스 타고 오는 걸 보니 고정 고객이 제법 있나 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산하게 텐트 걷고 철수 준비해서 정리하고 온천에 들러 피로를 씻어내니 생각 외로 온천수의 감촉이 좋다. 게르마늄의 효용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다. 낡은 건물과 낙후된 서비스. 광고도 하지 않는 자신감은 수질에 있었던 것 같다. 폴란드 친구들과 나눈 진한 감성과 게르마늄 온천욕이, 캠핑에 대한 번거로움을 상쇄하고 남는다.  다음에 또 아들이 가자하면, 별 거부감 없이 나설 것 같다. 
 
[일시] 2025년 10월 25일
[장소] 강원도 인제군, 오아시스 정글 캠핑장
 

물봉선
캠핑장 안 개인 사택
캠핑장 입구
한계령 길

728x90

'桃溪遊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설(柹雪)이 내려 않기까지  (11) 2026.02.26
'한해살이' 밴드 공연  (10) 2025.12.15
집들이  (11) 2025.06.24
추억은 잊혀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13) 2025.04.22
캠핑  (12) 202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