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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동강할미꽃

[바람이 만든 길에서 만난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과 작별한 지 10년 만이다. 해마다 봄볕에 그을린 미소를 지으며 그리워했다. 속절없이 흐른 시간에 풍파가 많아 찾아뵙지 못한 점 송구한 마음이다. 
 
산행 들머리가 예전과 다르게 백룡동굴 주차장이어서 낯설다. 예나 지금이나 산은 여전히 가파르고 새끼줄 같은 산 길은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아 희미하다. 호흡을 몰아 능선에 올라서서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씻는다. 겨울 찬 바람은 맞서기가 두렵지만, 봄 여름에 맞는 산 바람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사람이 만든 길로 바람이 몰려오고 바람이 만든 길로 사람이 오간다. 바람과 길과 사람은 동행이다.
 
풍경이 열리지 않는 백운산 정상 못 미쳐 바람에 밀려온 길을 따라 생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점점이 박힌 노란 생강나무 꽃은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이며 속삭인다. 생강나무 꽃이 물어내는 향기에 피로가 풀린다. 결코 일곱 걸음에 넘을 수 없는 칠족령까지 가는 길은 용의 이빨을 닮은 가파른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한다. 그 험한 바위틈 사이에 동강할미꽃이 고개를 들고 반긴다. 할미꽃의 미소는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닮아 숭고함마저 깃들게 한다.
 
동강할미꽃은 강물이 한이 맺혀 구불구불 쉬었다가 아리랑을 더듬으며 흐르는 동강, 그 석회암 절벽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진화해 온 세계 유일의 군락지다. 꽃이 귀한 만큼 탐내는 사람들도 많아 무분별하게 채취해 개체수가 급감하여 이제는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만날 수 있는 꽃들은 바위틈에 뿌리를 박아 사람들이 캘 수 없도록 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한 개체다. 
 
칠족령으로 이어가는 가파른 절벽 길에서 동강이 언뜻언뜻 보인다. 한두 송이 할미꽃과 어우러진 동강은 마르지 않는 수묵화처럼 마음에 스며드는 풍경이다. 이 또한 험한 산길에 지친 산객에게는 청량제와 같다. 거기에 더해 절벽 반대편에는 청노루귀가 남보라빛 귀를 쫑긋 세우고 산객의 걸음을 헤아린다. 이 또한 반가운 인사다. 흰 노루귀와 분홍노루귀는 흔한 편인데, 청노루귀는 꼭 이곳에서만 만나게 된다. 백운산의 할미꽃과 청노루귀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다.
 
칠족령 전망대에서 한반도 지형을 감상하고 문희마을로 하산하는 길에서 청노루귀 군락지를 만난다. 가슴 뛰게 하는 봄의 전령이다. 꽃은 가만히 바람에 흔들릴 뿐인데도, 그것을 맞는 산객의 마음은 바쁘다. 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허둥거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할미꽃과 노루귀를 가득 담아 하산하는 발걸음은 만선을 이룬 선장의 주름진 미소와 묘하게 닮아 연신 싱글거린다. 산이 거칠어 힘든 산행이었지만, 보물을 가득 담은 가슴은 풍선같이 양껏 부풀어 오른 행복이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남지 않기에 더 귀하다. 그래서 다시 동강할미꽃을 찾게 될 것이다.
 
[산행 일시] 2026년 3월 28일
[산행 경로] 문희마을 - 백운산 - 칠족령 - 전망대 - 문희마을(8km)
[산행 시간] 5시간
 

동강할미꽃
제비꽃
올괴불나무
생강나무
청노루귀
분홍노루귀
솜나물
돌단풍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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