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듯이]
나의 산행은 책을 펴는 일이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뜻밖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 힘들 때면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어 하고, 편안한 휴식이 될 때는 한동안 머물고 싶기도 하다.
우이령길은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레킹이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경계 짓는 고갯길을 군사용으로 사용하느라 40년 가까이 묶었던 길이지만 묶였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길이 평탄하다. 날씨가 추워 사람들이 많지 않은 길을 산 동무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도봉산 오봉을 가장 선명하게 만날 수 있는 전망대에 이른다.
오봉은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품고 있기도 하다. 다섯 봉우리의 둥근 암석을 지형학 용어로 '토르'라고 한다. 한 덩어리였던 화강암이 냉각 및 팽창하면서 표면 절리가 생기고, 직각을 이루며 교차하는 수평절리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나뉜다. 나뉜 조각들이 풍화하며 둥그런 모양이 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주변의 흙이 빗물에 씻기면서 둥근 핵석만 꼭대기에 남게 되어 주저리주저리 오봉의 전설을 만들었다.
우이령길에 접한 석굴암에 들러 무심한 듯 경내를 한 바퀴 돈다. 먼 풍경을 바라보며 호흡을 고르고 멈춰 선다. 책을 읽다가 이해가 어렵거나 졸리면 잠시 멈춰서 지나온 페이지를 다시 들춰보는 일은 앞 길을 잘 살펴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쉼표이다. 험하고 어려운 산행만을 고집하다가도 가끔은 이렇게 가벼운 산길을 걸으며 발걸음을 다독이듯 걸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자신을 옥죄고 억눌렀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다.
멋진 풍경이 아니어도, 험한 산길이 아니어도 한 페이지의 가치는 충분하다. 가끔은 편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뜻하지 않게 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다음 책장에는 무슨 풍경이 담겼을까. 궁금하지만 서두르지는 말자.
[산행 일시] 2026년 2월 7일
[산행 경로] 우이역 - 우이령길 - 북한산 둘레길(12길) - 북한산 둘레길(11길) (14.7km)
[산행 시간] 5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