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자 겨울 산 ]
오후 5시에 예식이 있어 오랜만에 느긋한 토요일 아침을 맞았다. 거실에서 뭉그적거리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등산 배낭을 꾸렸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차가운 날씨였지만, 산바람을 쐬어야 한 주를 버틸 에너지를 얻는 습관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성적인 결심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본능에 가까워진 셈이다.
인후통이 있어 찬 바람을 피하고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지만, 산바람이 막힌 목을 시원하게 틔워줄 것 같다는 나만의 처방을 따르기로 했다.
북한산성입구 들머리에 들어서자 기온은 조금 오른 듯했으나 여전히 냉기가 감돈다. 새벽에 내린 눈이 얕게 쌓여 길이 조심스럽다. 그만큼 눈 풍경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부풀었다. 올겨울 제대로 된 눈 산을 만나지 못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문지방을 넘은 자신이 대견해진다.
백운대 오르는 길, 원효봉 갈림길의 계단에서 발이 살짝 미끄러졌다. 꽁꽁 언 얼음 위에 눈이 얇게 덮여 있어 미처 알아보지 못한 탓이다. 눈이 많지 않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다.
북문으로 오르다 한숨 돌리며 막걸리 한 잔 하고 뜸 들이며 쉬는 사이, 햇볕이 든 자리의 눈은 금세 사라졌다. 기대가 조금 무너지는 느낌이지만, 이 또한 내가 걷는 길이니 탓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며 몸을 정화하고, 목에 걸린 인후염까지 소독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북문을 지나 원효봉으로 향하는 길, 꽁꽁 언 겨울이 발목을 잡는다. 아이젠을 차기엔 눈이 적고, 차지 않자니 군데군데 얼음이 도사리고 있어 선택이 쉽지 않다. 결국 아이젠 없이 오른다.
원효봉 정상에는 들개와 들고양이들이 여전히 텃세를 부리듯 의기양양하다. 이 추운 겨울,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을 텐데 어떻게 살아갈까. 사람들이 오르면 떼를 지어 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는 눈빛이 애처롭다.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요즘은 산에서 태어나 아예 이곳을 고향으로 알고 살아가는 무리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들은 민가로 내려가는 길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원효봉 정상에서 바라본 백운대는 북벽이어서 눈이 남아 있을 법했지만, 풍경은 의외로 밋밋하다. 올겨울은 유독 눈과 인연이 없다. 겨울산은 눈이 있어 더 아름답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겨울만 되면 하얗게 덮인 산을 그리워하게 된다.
눈 산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담아 하산하는 길. 올라올 때 미끄러졌던 계단에서 앞서가던 산객이 키 그대로 넘어졌다. 그는 당황한 듯 신음하며 일어나 벤치에 앉는다.
“다친 데 없으세요?”
“손목이 좀 이상하네요.”
잠시 쉬었다 내려가겠다고 한다. 꽤 크게 다친 듯하다. 덕분에 나는 더욱 조심스레 발을 옮길 수 있었다.
조심하자, 겨울 산.
눈 없는 겨울 산을 아쉬워하기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에 오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영광으로 여기자. 겨울 산에서처럼, 삶에서도 한 걸음은 늘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한다.
[산행 일시] 2026년 1월 24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탐방센터 - 원효봉 - 북한산성 탐방센터 (원점회귀 : 7.5km)
[산행 시간] 3시간 1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