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쟁반대 파병반대
‘전쟁반대 파병반대’라는 구호를 대로변 사거리에 내걸고 국민을 향해 외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 구호가 과연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영역을 다투는 일은 동식물을 막론하고 본능으로 작동한다. 인간 역시 이러한 속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다만 인간은 이성적 판단 능력을 갖추었기에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을 뿐, 전쟁 자체를 제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사라진 적은 거의 없다. 작금의 세계정세도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전쟁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그 증명이다. 전쟁은 피하고 싶다고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쟁뿐만 아니라 작은 다툼도 싫어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벌 역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꿀을 탐낸 말벌이 급습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일벌은 말벌로부터 꿀을 지키고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 생존의 게임에서 전쟁은 피할 수 있는 선택조건이 아니다.
그런데도 ‘전쟁 반대, 파병 반대’라는 구호가 반복된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말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될 때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해서 전쟁이 사라진다면, 인류의 역사는 이미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는 오히려 정반대를 증명한다. 임진왜란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전쟁은 내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힘에 의해 시작될 수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파병 반대’ 또한 같은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파병은 결코 가볍게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의 이익, 안보,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역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그럼에도 이를 단순한 구호로 부정하는 태도는 책임 있는 공론이라 보기 어렵다.
물론 전쟁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전쟁의 참혹함을 막고자 하는 진정성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만으로 현실의 위협을 제거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전쟁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만 가능하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그들 선동의 속마음에는 아예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이런 선동을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적을 이롭게 행동하는 반국가세력일 것이다.
공동체 사회는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책임과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감성에 호소하는 구호가 현실적 대비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전쟁반대 파병반대’라는 말은 듣기에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구호가 현실을 외면한 채 반복될 때, 그것은 평화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구호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무조건 전쟁 반대가 아니라 “적을 선제공격하지는 말자” 정도는 동의할 수 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선택은 분명하다.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전쟁 반대’는 구호가 아니라 다짐이어야 한다. 전쟁을 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더 냉정하게 준비해야 한다.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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