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부제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지은이 : 신형철
문학평론가
전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재직
저서 : 『몰락의 에티카』,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외
펴낸곳 : 난다
페이지 : 326쪽
[시는 인생의 육성인가, 평론가의 독백인가]
신형철은 2005년 계간 '문학동네'에 평론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역사'는 단순한 시 비평집이 아니라, 시를 매개로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이른바 ‘시화(詩話)’ 형식의 책이다. 2022년 초판 발행 이후 2024년까지 17쇄를 찍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분명 시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인생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시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시를 통해 인생의 궤적을 더듬는다. 전통적인 평론 형식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문체를 취하고 있으며, 시, 한편 한편에 자신의 산문적 사유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이 독자의 이해력 문제인지, 아니면 책 자체의 난해함 때문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책에는 동서고금의 시 25편이 실려 있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가장 오래된 시인 ‘공무도하가’에서부터 현대 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대와 감성을 아우른다. 신형철은 서문에서 “시를 인생의 육성(肉聲)으로 본다”라고” 말한다. 시란 인간이 겪은 감정과 체험의 진솔한 기록이며, 시의 행과 연은 곧 ‘걸어가는 인생’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러한 시각은 시를 분석의 대상으로 두기보다 체험과 공감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저자는 독자에게 시를 이해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시를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보라고 권한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독자는 친절한 해설이 아니라, 사유의 여백 속으로 내던져진다. 차라리 명료한 해설이었더라면 접근성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는 인생의 육성이다. 그러니까 시를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요약한다. 신형철은 시가 탄생한 자리, 즉 인간이 상처 입고 사랑하고 좌절하며 견뎌온 순간에 주목한다. 그러나 책에 수록된 시들 자체가 대체로 난해한 데다, 평론 역시 그 난해함을 덜어주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시는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보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로 기능한다. 이는 시를 ‘인생의 육성’으로 읽겠다는 저자의 선언과는 다소 어긋나 보인다. 독자는 시를 듣기보다, 평론가의 목소리를 먼저 듣게 된다.
신형철의 글은 치밀하고 정교하다. 이는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독해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물론 독자의 이해 수준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를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설득의 노력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신형철의 책을 ‘곁에 두고 오래 읽기’가 쉽지 않다.
특히 문제점으로 느껴진 부분은 시 평론 과정에서 사회적 사건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장례식 블루스(W. H. 오든)’를 다룬 대목에서 저자는 2015년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소환한다. 경찰의 부검 요구를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로 비판하며, 우리 사회가 ‘애도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이 연결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시와 사건 사이의 필연적 연관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저자의 정치적·윤리적 판단만이 강조된다. 백남기 사건의 핵심 쟁점은 공권력의 행사 방식과 시위 문화 전반에 대한 복합적 논의에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러한 맥락을 충분히 성찰하지 않은 채, 단선적인 도덕적 판단으로 사건을 호출한다는 인상을 준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언급 역시 문제 적이다. 저자는 ‘교통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우리 사회가 애도의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년간에 걸쳐 수차례의 조사와 특검을 통해 세월호 참사는 명백한 해상 교통사고로 결론 났다. 이처럼 이미 사회적 합의에 이른 사안을 시 평론의 맥락에서 다시 끌어와 문제 삼는 태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와 무관해 보이는 장례식과 사회적 비극을 반복적으로 소환하는 방식은, 시를 통해 삶을 성찰하기보다는 저자의 사상을 과시하거나 주입하는 경향으로 흐른다. 그 과정에서 시는 오히려 도구화되고, 독자는 소외된다. 지식인의 언어가 이처럼 무책임하게 휘둘려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논리적 설득력이 약한 대목도 적지 않고, 지적 과시로 보이는 문장들이 글맛을 해친다. 이 점은 이 책의 분명한 오점이다. 다만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애독한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 앞에서, 그 독서 경험 자체는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누구에게도 선뜻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서평을 쓰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개인적 거리감이 컸기 때문이다.
2026년 1월 23일

'칼럼,書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칼럼] 전쟁반대 파병반대 (3) | 2026.05.08 |
|---|---|
| [書評]무기여 잘있거라 (15) | 2026.04.03 |
| [書評] 달과 6펜스 (13) | 2026.03.13 |
| [書評] 세계서점기행 (10) | 2026.03.06 |
| [書評]고려시대 유학 통치와 오경(五經)의 활용 (10) |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