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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지리산 7암자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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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를 구하는 일이 그리 쉽기야 하겠냐만은 함양 음정마을에서 도솔암 오르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길이 없는 길을 가야 하는 산객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소쩍새가 밤을 새워 산길을 밝힌다. 부처님 오신 날 딱 하루 열리는 7 암자 순례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세상 살면서 엉킨 감정들을 풀어내고 새로운 마음을 여미기 위하여 求道의 마음으로 들어선 순례길이다. 
 
도솔암 오르는 길에서 선두에 섰던 리더가 길을 잘못 잡았다. 가파른 돌무더기 길을 개척하는 일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겠다. 사람이 많아 걷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다. 개인적으로는 전날 하프 마라톤을 달리고 왔던지라 아직 피로가 덜 풀린 상태였으므로 가다 서다 쉬엄쉬엄 오르는 길이 그나마 다행이다. 깜깜한 밤에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길이 헷갈리고 진행이 늦으니까 짜증을 섞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야심한 밤에 순례길 산중에서 옹졸한 마음으로 짜증을 낼 일이었으면 그냥 집에 있지. 
 
도솔암에 올라 일출을 맞는다. 순례길에서 일출을 맞는 기분은 남다르다. 배가 출출해서 막걸리 한 잔 마시려 꺼냈더니 절에서 술 마시는 거 아니라며 시비를 던진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도로 집어넣었다. 이제부터 길은 다소 순하게 연결된다. 고상하게 순례길이니 뭐니 할 거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면 된다. 영원사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고 상무주암 가는 길에 아침 먹으며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켜니 세상이 밝아 보인다. 道는 막걸리 잔 속에 있나 보다.
 
상무주암에 도착하니 커피를 나눠준다. 달콤한 한 잔에 피로를 푼다. 지리산 암자의 경기가 예전 같지 않게 어딘가 모르게 썰렁하다. 처사로 보이는 분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사진을 찍고 홍보해 주기를 원하는데, 이곳에서는 귀찮다는 듯 말을 한다.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는지 모르겠지만, 求道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그곳에도 道는 보이지 않았다.
 
문수암에 이르니 스님은 보이지 않고 젊은 처사가 떡을 나눠준다. 문수암에서 삼불사까지 지리 주능선이 펼쳐져 순례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다시 길을 잡아 삼불사에 도착했다. 삼불사에도 스님은 보이지 않고 관리하는 처사 한 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보시함이라고 써 붙인 항아리가 마루에 입을 벌리고 있다. 그냥 돌아서기가 멋쩍어서 이만 원을 항아리에 넣었다. 보시를 할양이면 그냥 바람도 흔적도 없는 무주상無住相 보시가 최선이라 했으니 흔적을 남기지 말자. 그러나 지금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보시했다는 이 마음을 어떻게 흩어버릴 수 없을까.
 
약수암에 이르러 약수 한 잔 마시고 길게 호흡을 들이켠다. 깜깜한 밤부터 시작된 순례길의 막바지다. 이어서 실상사에 이르러 순례를 마무리한다. 실상사에는 규모만큼이나 사람들도 많고 잔치 분위기다. 공양을 주는 곳을 찾지 못해 그냥 경내만 둘러보고 나왔다. 순례길에서도 道는 구하지 못하고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겠다. 하루 만에 구할 수 있는 道였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道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자리에서 찾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산행 일시] 2025년 5월 5일
[산행 경로] 함양 음정마을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15.3 km)
[산행 시간] 7시간 43분
 

도솔암 일출
도솔암
노루삼
영원사
개별꽃
얼레지
철쭉
상무주암에서 바라본 반야봉
상무주암
금창초
태백제비꽃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매화말발도리
관중
금낭화
문수암
문수암에서 바라본 지리능선
삼불사
약수암
불두화
할미꽃
솜방망이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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