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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청계산 진달래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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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의 혹등고래를 닮은 청계산 진달래 능선을 만나는 설렘은 괜한 흥분이 아니다. 돌풍 비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만나러 오르는 길은 즐거움이다. 그를 만나러 청계산에 와락 껴 안기니 좋기도 하지만 왠지 쑥스럽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 그에게 안부를 전한다. 
 
앞뒤 재지 않고 어설프게 덤비는 것은 실례다. 그의 가슴이 뜨거워질 때까지 포근하게 쓰다듬고 어루만져야 한다. 헛물켜는 속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제비꽃, 현호색, 개별꽃들이 반긴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보라색, 흰색, 노란색들을 땅속에 숨겨뒀다가 봄이 되면 예쁘게 색을 올리는 에너지가 마냥 신기할 뿐이다. 자연은 언제나 위대한 아름다움이다.
 
목이 탄다. 헬기장에 올라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키며 가쁜 호흡을 다듬는다. 그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가슴은 분홍빛으로 젖어 있다.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 딴청을 부리며 연초록 싹이 초록초록 돋는 팥배나무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겸연쩍게 팔을 저으며 진달래 능선 길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다. 
 
그를 만나는 시간, 오 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에게 안기니 넉넉한 가슴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이 좋다. 자잘한 흥분에 싸이는 행복감은 나이와 상관없나 보다. 얼굴에 주름이 늘었지만 가슴은 아직 청춘이다. 꼭 안고 길었던 회포를 푼다. 숨이 멎을 것 같은 황홀감에 사랑한다는 말도 잊었다. 그는 이미 분홍빛으로 흠뻑 젖었다. 나도 그를 닮아 분홍이 되었다. 비를 맞아도 두렵지 않았다. 오롯이 나는 그의 사랑이 되었다.
 
[산행 일시] 2025년 4월 12
[산행 경로] 원터골 - 길마재 정자 - 헬기장  - 옥녀봉 - 진달래 능선 - 원터골(6.5km)
[산행 시간] 3시간 30분
 

개별꽃
팥배나무
현호색
매화말발도리
황매화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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