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은 북한산과 도봉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인데 한번 걸어 본 경험이 있다. 물론 여러 번에 나눠서 걸었다. 둘레길이라 해서 평탄한 산책길이 아니라 산 길도 있고 마실길도 있다. 친구들과 북한산 둘레길을 한 번에 완주하자고 모의했다. 실패하더라도 두려워 말자. 그것은 또 다른 문을 열기 위한 창조의 과정이니 덤비고 보자.
저녁 8시 30분 불광역 장미공원을 출발하여 둘레길 역방향인 탕춘대 방향으로 출발했다. 옛성길(7구간) 구간 지나고 평창마을 길(6구간)에 접어들어 평창동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알바했다. 밤 길이어서 이정표 인식이 쉽지 않은 점은 야간 산행에 장애요소다. 평창동 길을 걸으며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는 맛은 이국적인 분위기다. 웅장한 대저택들이 문을 잠그고 사회와 격리할 태세로 담벼락을 높였다. 도로에는 인적이 없다.
우이동 소나무숲길(1구간)까지 가는 길에 길 찾느라 애로를 겪으며 몇 번 알바했다. 밤길을 20km 이상 걸었으니 눈이 감기고 하품도 길어진다. 완주할 수 있을지 1차 고비다.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와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잠시 쉬었다. 다시 길을 재촉해 도봉옛길(18구간)에 다다르니 여명이 열린다. 다락원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맞고 싶었지만, 일출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아 길을 재촉했다. 다락원길(17구간) 중간쯤에서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이 없다. 간혹 있기는 해도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버스를 타고 도봉산역으로 이동했다. 순댓국으로 허기를 채우고 막걸리로 입가심했다.
대원들 중 한 명은 약속이 있다며 아침 식사 구간까지만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32km, 10시간 10분 걸었다. 나머지 두 명은 끝까지 완주하기로 했으나 무릎이 좋지 않아 무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혼자 남게 되어 잠시 흔들려 2차 고비가 왔지만, 끝까지 결행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친구들과 헤어져 전철을 타고 회룡역에 내려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후반전을 시작했다. 혼자라서 외롭기는 해도 견딜만하다. 좋은 점은 보폭과 스피드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지와 내리막에서는 빠른 속도로 걷거나 뛰기도 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다.
의정부 안골길(15구간)과 산너미길(14구간)은 오르막이 제법 있고 계단도 많다. 송추마을길(13구간)부터는 길이 평탄해서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도로 길을 걸어야 하는 곳이어서 산행 맛이 덜하고 지루하다. 충의길(12구간)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양평해장국 집에 들러 막걸리와 곁들여 허기를 채웠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 더군다나 남은 코스는 잘 아는 코스여서 고갈된 에너지를 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 구름정원길(8구간)을 걸으며 긴 하루를 돌이킨다. 후반 32.6km 6시간 42분, 총 64.6km, 16시간 52분 걸었다. 지치고 힘든 길이지만 행복한 하루다. 친구와 끝까지 함께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무리하면 안 되기에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산이나 여행 길이 아무리 좋다 해도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친구와 함께했던 기억일 것이다. 다음에 또 다른 기억으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산행 일시] 2025년 4월 26일, 27일
[산행 경로] 불광역 - 북한산, 도봉산 한 바퀴 - 불광역(64.6km)
[산행 시간] 16시간 5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