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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538

삼각산 홍시길 봄비가 흠씬 내려 답답하게 갇혀 있던 도심의 시야가 맑아졌다. 그만큼 봄이 한 뼘 더 깊어졌다. 봄 산을 올라왔으니 이제 여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삶은 산행과 닮아 있다. 매일 다니던 산길이어도 갈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삶의 궤적도 매일의 일상이지만 하루하루의 색깔과 바람의 농도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산을 빗대어 삶을 가늠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눈비를 맞고, 바람도 맞았으니 두려울 것은 없다. 발톱이 빠지더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다가 올 계절을 묵언하듯 맞으면 된다. 높이 오른 만큼 시야는 더 커지는 법이다. [산행 일시] 2023년 5월 6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향로봉 - 비봉능선 - 사모바위 - 응봉능선 - 진관사 - 북한산 둘레길 - 불광중학교(10km) [산.. 2023. 5. 7.
삼각산 비봉능선 구름에 갇힌 하늘이 끝내 울음을 삼키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 연둣빛 빗물이 가슴으로 스민다. 산행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던 산객의 마음에 한기가 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인가. 몸을 비틀어 꾹 눌러 짜니 녹색물이 뚝 떨어진다. 그 틈으로 연분홍 철쭉이 꽃잎을 떨군다. 낙엽이 질 때까지는 풋풋하게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綠雨를 품었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그런 만큼 향기도 유달리 푸른 하루였다. [산행 일시] 2023년 4월 29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 향로봉 - 비봉 - 문수봉 - 대남문 - 대동문 - 노적봉 - 백운봉 암문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13.5km) [산행 시간] 4시간 30분 2023. 4. 30.
삼각산 원효봉 [행복한 꿈] 북한산성 입구 화장실에 들러서 큰일을 보던 친구는 뒤늦게 깨달았다. 흔히 접해보지 못하던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아차! 여자 화장실이다. 숨죽이며 바깥 동태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는 틈을 타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좀 전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북한산을 품고 빙그레 웃고 있다. 인간은 때때로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러 놓고 그 일을 해결하느라 긴박한 에너지를 쏟고는 성취감을 느끼는 습성이 있다. 어쩌면 친구도 그런 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무 생각 없는 듯 태연하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그 난감함을 극복하느라 짜릿한 감정을 즐겼던 것일까. 아침부터 난처함을 해결했으니 산행 내내 발걸음이 가볍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다. 다음에 또 그.. 2023. 4. 17.
삼각산/도봉산 [꽃길만 걷자] 지리산 종주 산행 준비 할 겸 해서 삼각산과 도봉산을 연계하여 25km 산행길에 나섰다. 봄비가 지나간 산 길에는 진달래가 도열하듯 상큼한 분홍색 단장을 하고 반긴다. 탕춘대 능선 길에는 산벚꽃이 화사하게 도란도란 피어있고, 상기된 얼굴로 새봄을 맞은 돌복숭아 꽃은 분홍빛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흐트러진 옷고름을 고쳐 맨다. 비봉 능선길에도 길 양 쪽으로 진달래꽃이 삐죽빼죽 다투듯 싱그럽게 피어있다. 사모바위 주변에는 노랑제비꽃이 눈 맞춤을 청하는데 눈을 맞추기가 쑥스럽다. 아마 수줍음이 많아 낮 가림이 심한 탓일 것이다. 청수동 암문을 오르는 가파른 길에는 노란 꽃등을 켠 듯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어 꽃밭을 펼치고 있다. 평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데 해발 600미터 정도에서 자생하.. 2023. 4. 9.
삼각산 의상능선 [행복] 자연을 따라 순응할 때 인생도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자신감과 자만심 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삶의 연륜을 쌓으면서 건강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의 중요함도 알았다. 산에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건강한 두 발만 있으면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소박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살았다. 햇빛과 산소는 너무 흔해서, 가족과 친구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로소 햇빛과 공기가 느껴지고 가족과 친구가 보인다. 자연이 내어주는 대로 조금은 모자란 듯 살아가면 될 것이다. 끌어안아서는 가질 수 없지만, 내려놓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산행.. 2023. 3. 30.
관악산 지난겨울 움츠렸던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면 봄 산에도 향기가 돋는다. 봄 산에 대한 기대를 안고 발을 들여놓은 관악산에는 새소리 바람소리 보다 사람소리가 더 많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꽃이 우리 일행들을 생경스럽게 반긴다. 연주대 오르는 깔딱 고개는 친구들과 함께여도 힘들다. 저 고개에 올라서면 어떤 풍경이길래 이토록 자존감을 바짝 세워 꼿꼿이 서 있을까. 한 발 한 발 오르는 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도란도란 호흡을 나누니 견딜만하다. 서울대 입구에서 연주대 오르는 길은 조망이 열리지도 않고 지루하고 힘들다. 그렇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서울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연주대 정상에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정사진을 남기려는 줄이 길게 서 있다. 미세먼.. 2023. 3. 26.
삼각산 [친구와 산] 산에 든 사람은 누구나 세상 근심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과, 산 길을 힘겹게 오르면서 수반되는 육체적인 고통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조화하느냐에 대한 숙제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둘의 관계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유와 고통은 등배지기다. 등과 배가 맞붙어 있지 않으면 하나의 개체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관계다. 산에서는 고통과 자유의 개념에 집착하기보다는 고통은 자유를 위한 시금석이고 자유는 고통으로 가는 징검다리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고통 없이 이뤄진 자유는 김 빠진 맥주와 같아서 그 가치가 일천할 것이고, 자유 없는 고통은 불행이다. 산에서 겪는 고통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선택한 고통이며, 산에서 얻는.. 2023. 3. 6.
삼각산 초운길 우수 지나 봄으로 가는 빗장이 열리고 산속의 공기도 부드러워지니 산 향기를 느끼고 싶다. 맑은 공기를 들이켜 각박해진 긴장을 풀고 자벌레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삶의 궤적에서 조금씩 비뚤어진 리듬을 제 자리에 껴맞춰 본다. 산행을 할 때마다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앞 뒤 분간 없이 다녔는데 그럴 일이 아니다. 산에서 만큼은 여유를 만들어 산속에서 느껴지는 자연과 함께 참된 의미를 깨닫자. 산에 오를 때만이라도 나를 비워내어 나만의 교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제일 관대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담을 수 있는 여유가 모자란다. 산에서는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관대한 자연의 빈 그릇을 배울 수 있다. 비워 낸 그릇에 내가 아닌 세상 만물을 마음껏.. 2023. 2. 21.
백운대 일출 일출이 벅차게 아름다운 것은 너도 나도 아름다운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새해 소망을 담아 일출을 찾아 산에 오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슴의 온기가 미적지근하다. 대단히 큰 소망을 이루고자 함은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에 대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욕심이 있다면 가슴에 심은 작은 희망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들어 가는 화초에 물을 주듯 다시 일출을 맞아 가슴에 온기를 채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백운대 산행에 나서는 길. 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희망을 되내며 어두운 새벽을 열어 산문에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희망의 불씨를 지킬 수 있었음이니 더 이상의 욕심은 필요치 않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이 그리 허술한 것은 아니어서 이왕 나선 길. 일출을 맞겠다.. 2023. 2. 14.
삼각산 원효봉 [버들강아지처럼] 한파가 기성을 부려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입춘 지나고 봄기운이 뾰족뾰족 돋아 납니다. 꽃샘추위가 아직 남기는 했지만 가을이 진 자리에 겨울 그리고 봄입니다. 계절이 바뀌려니 마음이 자꾸 가렵습니다. 아마 당신이 많이 그리운가 봅니다. 버들강아지가 포슬포슬 피는 새 봄에는 깊은 연못에 내 마음 던져 놓고 가만히 파문을 그려 보렵니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가까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자국마다 행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산행 일시] 2023년 2월 11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입구 - 북한동 역사관 - 개연폭포 - 북문 - 원효봉 정상 - 효자동(5.5km) [산행 시간] 2시간 30분 2023. 2. 11.
소백산 왜, 산이 그립지 않았을까만은 그립다 말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니 일천한 제 마음을 혜량 하여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깐깐한 자존심에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허파를 찢을 듯한 산 바람을 피하기보다는 존경하는 마음을 오롯이 담아 그대를 품습니다. 누가 그럽디다. 길을 모르면 물어서 가고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큰길로 가고 큰길이 보이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라. 그대를 향해서 내딛는 걸음.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가고 눈보라가 몰아치면 손 잡고 가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면 기다렸다가 함께 가리라. [산행 일시] 2023년 2월 4일 [산행 경로] 어의곡매표소 - 비로봉 - 천동쉼터 - 천동매표소(13km) [산행 시간] 4시간 30분 2023. 2. 6.
태백산 태백산 고사목도 세월을 따라 늙는다. 코로나 시절을 지나면서 자주 뵙지 못하다가 몇 년 만에 들렀더니 어금니가 빠진 듯 허전함이 느껴진다. 언제든지 태백산에만 오르면 주목 군락지에서 하늘을 받치고 있던 고사목이 반겨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 둘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이라던 주목 고사목이 힘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행복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음인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가져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음을 이미 깨달아 버렸기에 껍질까지 벗어놓고 오롯이 나목인 채로 한 점 아쉬움 없이 세월에 맞서다가 이제 그 흔적마저 지웠으니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다. 그 자리에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비움을 얻었으니 행복이다. 태백산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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