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山 行

(574)
북한산 삼천사 계곡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슬기로운 방법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즐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볕더위에 계곡을 찾는다. 연신내에서 향로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더디다. 예사롭게 한 달음에 오르던 길을 중간중간 쉬어갈 수밖에 없다. 쉬어가지 않으면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 향로봉 오르는 중간 못 미쳐서 약수터에서 마음껏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남는 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열기를 식히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서너 번 쉬어서 향로봉 정상에 오르니 혓바닥이 길게 늘어진다. 이런 더위에 산행을 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나마 삼천사 계곡에 몸을 담근다는 기대감이 있으니 버틸만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지쳐가고 길 위에서 단단해져 간다. 산은 육체의 능력으로..
북한산 백운계곡 무더운 여름을 피하기 위하여 멀리 이동하는 것은 또 다른 무더위에 포위되는 경로일 것이다. 하여 가까운 북한산 백운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더위를 쫓아 여기까지 따라온 마음의 티끌들이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는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낮은 폭포를 이루는 시원한 물줄기가 반겨주고 소나무의 청량한 향기가  손을 내밀어 잡아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갖은 야생화들이 가을을 잉태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 대견하다. 산행할 때마다 힘을 보태주는 친구들이어서 언제나 반갑게 맞는다. 늘 보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덜컥 두려울 때도 있다. 야생화 군락지에 다른 잡초들이 침범해서 군락지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연의 섭리를 에둘러 변호하지는 않는다.  계곡에 발을 담그니 세상..
북한산 인수계곡 단숨에 오르내리던 숨은 벽 능선 오르는 길에서 컨디션 난조를 겪는다. 더위를 먹었는지, 속도 불편하고 발걸음도 무겁다. 지난주에 이어 폭염을 피해 계곡을 찾아드는 길이 고난의 행군이다.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오르면 되는 간단한 해법이 있는데도 굳이 서두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나 자신이 습관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 온몸이 땀에 절어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 계곡을 만나니 물 만난 고기가 된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느긋하게 충전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세포가 되살아난다.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니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여정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의 괴임돌이다. 청담폭포에서 어린아이들 마냥 폭포 샤워를 즐기고 청담계곡으로 들어섰는데, 이정표 없는 갈림..
북한산 인수계곡 습하고 무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문을 열고 숨은 벽 능선에 올라선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주니 견딜만하다. 산에 오를 때마다 에너지를 완전히 방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산에 오르는 목적을 굳이 채색하거나 따로 포장할 필요도 없이 습관이 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를 방전하여 그릇을 비움으로써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꾼들은 일상에서의 복잡 다단한 스트레스에 널브러진 잔재들을 비워내고 산에 올라 다시 채우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다시 말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뒤틀리고 몸살을 앓는다. 습관처럼 산에 오르면 이유도 없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북한산 구석구석 수없이 다녔지만 아직 미답지가 있었다. 길도 방향도 모르는 계곡길이지만 노련한 산꾼들이 함께 동행하였으니 든든..
앵봉산 장마전선이 펼쳐져 있어서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기를 망설이다가 우중 산행을 작정했다. 비를 흠뻑 맞아도 수습이 수월한 도심의 산책길 같은 앵봉산을 오르니 습하기는 해도 비는 내리지 않는다. 도심의 공원 같은 산행길이라 산행에 부담은 없으며 빼어난 산세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산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도심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날마다 접하는 도심의 건물들을 조금 더 높은 각도에서 만나면 또 다른 풍경이 된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낯 선 풍경을 만나게 되면 고착화된 관념의 변화를 꾀할 수 있어서 새롭다. 가끔은 낯 선 것들에 대하여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익숙한 것들에 대하여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또 다른 행운이 될 것이다. [산행 일시] 2024년..
안산 자락길 서대문구 중심에서 나지막이 버티고 있는 안산이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서울 시내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자존감이 짱짱한 산이다. 지하철로도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런 의미에서 산이라기보다는 공원이다.  서울에는 산이나 하천을 공원으로 꾸며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가 많은데, 도시공원으로서 좀 투박한 면은 있어도 다양한 모습, 다양한 식생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인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인공적인 공원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워서 좋다.  안산은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품에 들면 위안을 얻기에 충분하다. 작은 공원에 깃들어 휴식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안산에 올라 서울을 ..
강북오산종주(북도사수불) 강북오산종주를 두 번 정도 했었는데, 할 때마다 체력의 한계를 느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덮은 지가 10년은 족히 되었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을 연계해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겠다는 잠재워 둔 욕망에 친구가 불을 지폈다. 강북오산종주 산행을 함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수사도북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우리는 난이도가 더 많은 북도사수불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금요일 밤 11시에 불광동 장미공원을 출발하여 대장정을 시작한다. 서울 시내의 불빛들도 졸려서 하나 둘 잠기고 구름사이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가늘게 뜨고 있다. 산길에는 둘의 발자국 소리만 선명한데, 정적을 울리는 소쩍새가 밤새도록 슬피 울어댄다. 소쩍새의 열정적인 구애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청계산 이수봉 스치기만 해도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초여름의 청계산에서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고 호국의 간성임을 자부했던 역사의 발자취에서 한 발 물러서서 동문 선후배들이 모여 교가를 합창한다. 선후배 간에 안면이 확실치 않아 서먹하기는 해도 교가를 부르는 순간 우리는 남이 아님을 확신한다. 교가를 부를 기회가 많지 않아 잊힐 것 같은데도 가슴속 어딘가에 꼬깃꼬깃 재워두었던 교가는 단추를 풀기만 하면 술술 나온다.  이수봉 오르는 등산로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지만 마음먹고 한참을 걸어야 한다. 연세가 지긋한 대선배님들도 끄떡없이 잘 걷는 걸 보면 평소 관리를 잘하셨나 보다. 200 명 넘는 동문들을 한꺼번에 풀어 놓으니 등산로가 가득 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복한 걸음이다.  모교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