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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539

삼각산 숨은벽 워매! 내 가슴에도 단풍 들겠네. 가을이 떠나려나 노심초사 조바심을 떨쳐내지 못한 채 치맛자락을 겨우 잡았다. 가을은 거기에 있었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가을을 안고 조용히 침잠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그가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릴까 두려웠었는데, 산속의 가을은 떠나는 게 아니라 성숙해지고 있었다. 단풍이 들면 낙엽이 떨어질 테고 낙엽을 떠나보낸 나목은 홀로 겨울을 맞게 될 것이다. 그래도 꿈쩍도 않는다. 의연한 그의 모습에서 숙성된 철학을 배운다. 산길은 언제나 그랬다. 갈 길은 보이지 않지만 지나온 길은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인생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우리는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 보며 지나 온 길을 기억한다. 그 기억.. 2022. 10. 30.
삼각산 비봉, 의상능선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한 단면을 채우러 우리는 산으로 간다. 비봉 능선을 따라 문수봉에 올라서면 서울과 경기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자연의 하모니를 가슴에 새기면 더 이상 삶의 존재도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문수봉에서 조망되는 백운대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볼 때마다 설레게 한다. 나한봉을 기점으로 의상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걸어 내려가면 백운대는 산객을 따라 한 치의 여지도 없이 졸졸 따라온다.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백운대의 풍경은 달라진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이다. 인생은 다면적이므로 보는 이의 주관적인 해석을 경계한다. 못.. 2022. 10. 24.
지리산(15) 열다섯 번째 지리산 종주 길. 오직 지리산에 올라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겁 없이 덤볐던 첫 길을 기억한다. 분명 내게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지리산에 올랐다. 고개마다 구비마다 만나는 꽃들과 눈 맞추고 나무와 인사하고 풀벌레 소리에 귀를 세우고 새소리에 정을 나누고 바람소리에 마음을 열어가며 걸어온 길. 웬만큼 채웠으리라 더듬어보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다. 친구가 지리산 첫 종주 길에 나섰다. 아직 준비가 모자라지만 마음이 앞선 그는 어떤 부족함을 채우려 했을까. 깜깜한 밤을 밝혀 지리에 발을 디디며 가슴이 얼마나 벅찼을지 짐작이 간다. 하늘에는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오리온 별자리들이 초롱초롱 걸려있다. 거친 호흡을 몰아가며 노고단을 지나 반야봉을 내려오던 길에 여명이 열린다. .. 2022. 10. 18.
설악산 흘림골 설악은 설악이다. 단풍이 아직 제대로 물들지 않았지만 설악에 들어서면 더 이상의 바람은 의미 없는 욕망이 된다. 친구들과 함께 설악에 든 것은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설악의 치맛자락이라도 잡고 칭얼거려야 건강한 겨울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산을 즐겨 찾는 山人으로서 설악에 대한 기본적인 예를 갖추는 절차다. 흘림골은 2015년에 엄청난 폭우로 계곡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동안 정비를 하고 계단과 데크를 만들어 안전한 탐방로를 확보하여 금년 9월에 7년 만에 재개방하였다. 지금은 하루에 5,000명만 입장할 수 있도록 예약제로 관리하고 있다. 연휴를 맞아 많은 산객들이 줄지어 등선대로 오른다. 근교산 위주로 다녔던 친구들도 설악산에 도전한다는 설렘이 있었지만 힘들지 않다는 꾐에 도전했는데 생각.. 2022. 10. 9.
설악산 공룡능선 당신을 만난 지 꼭 오 년 만이다. 그때도 심사가 불편해 하늘을 구름으로 가득 채우고 치맛자락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을 풀지 않았으니 이를 어쩌랴. 내가 무심했구나. 그렇지만 오 년을 별러서 왔는데 마음을 좀 열어주기를 바랐건만 종일 비만 내린다.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어쩌겠냐만 두 번 씩이나 헛걸음했으니 이제 내 마음도 살펴 주시게나. 다음에 당신을 뵈러 오는 날에는 우리 서로 웃으며 포옹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을비 내리고 나면 가을은 더 깊어질 테고 설악의 단풍은 낙엽이 되고 또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소리 없이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운명을 탓하지는 말자. 생물의 본성이 그러하니 있는 그대로를 숙명처럼 맞자. [산행 일시] 2022년 10월 3일 [산행 경로].. 2022. 10. 3.
삼각산 파랑새 능선 처음부터 평탄한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삼각산 파랑새 능선도 그런 길이었다. 파랑새 능선은 길이라기보다는 다니지 말라고 경고를 붙인 禁道다. 인류가 발전을 거듭해 온 가장 큰 요소는 모험심과 호기심이다. 발전과 변화를 통하여 계속 진화하게 되면 종국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 무뎌지고 희석되어 인간 본성의 경계가 흐려지면 모험심과 호기심이 소멸하게 되는 시점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때는 동물과 별 다를 게 없는 하나의 생명체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는 아직 모험심과 호기심이 살아있으니 우리는 항상 긴장하며 낯선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삼각산 파랑새 길은 나에게는 무척 긴장되며 설렘이 많은 미지의 개척지다. 전 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에 대.. 2022. 9. 19.
우이령길 [충고와 경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에게는 친구와 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는 충고를 줄 수 있고, 적은 경고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충고와 경고는 삶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음을 깨우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충고와 경고를 싫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충고를 잘 못하게 되면 관계가 어정쩡하게 되거나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불편한 역할을 친구에게 맡긴다는 것은 친구라는 관계가 그나마 완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듣기 싫더라도 친구의 충고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나마도 못하면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한 달에 한 번 별러서 산행길에 나서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이령 길에는 하늘이 맑지 않다. 그렇지만 시.. 2022. 9. 19.
삼각산 [서두름] 산을 오를 때마다 쫓기듯 빨리 오르려고만 한다. 산을 내려올 때도 오르막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 조급하게 서두른다. 의사나 운동 전문가들이 빠르게 걸어야만 운동이 더 많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충고를 한다. 하지만 산에만 들어서면 경쟁하듯이 빨리 가려고만 한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신호가 바뀌면 조급한 마음에 빨리 서두른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산을 빨리 오르려고 조급해하거나 신호등에서 신호가 바뀌어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산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신호등은 다시 바뀌니까 서두르지 말자. [산행 일시] 2022년 9월 12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 중성문 - 대남문 - 북한산성 입구(8.5km) [산행 시간] 3시간 2022. 9. 13.
삼각산 도계 길 [친구] 몽고의 유목민 젊은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갈 수 없어서 또래 친구가 없다. 그래서 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그리워한다. 그러다가 군대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고 기다려진다. 역설적이게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유치원부터 대학 때까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친구가 절실하게 그립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군대를 갈 때쯤이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는 그동안의 친구들과 헤어짐을 슬프 한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몽고 유목민 젊은이들이 그렇게도 설레고 기다려지는 친구들을 만나 조잘조잘거리며 산행을 하면 힘든 산 길도 쉬 지나갈 수 있다. 긴 산행을 하다가 뒤돌아보면 어떻게 .. 2022. 9. 4.
청도 삼성산 대구와 청도 경계의 비슬 지맥 능선에서 학암 지선을 만나는 꼭짓점에 맺힌 삼성산 봉우리. 동쪽으로는 팔조령, 서쪽으로는 비슬산과 이어진다. 교가에 등장하는 삼성산을 만나는 일이 그리 쉽기야 하겠냐만은 동네 뒷산으로 올라서 삼성산 가는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등산객이 많지 않으니 길이 분명치 않다. 길 군데군데 멧돼지들이 땅을 후벼 파고 진흙 목욕을 한 흔적이 질펀하다. 중간쯤 갔을 즈음 발정 난 고라니가 맘 편하게 연애 한 판 하려고 폼 잡았는데 난데없이 산객이 나타나 훼방을 놓으니 심술이 났나 보다. 나와 눈을 맞추고는 황급히 도망가길래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아뿔싸! 속이 천불 난 거야. 캑캑거리며 산을 들고 흔드는 바람에 적잖이 겁이 났다. 인기척 하나 없는 산 길에 멧돼지 흔적과 야생화 몇 송이, .. 2022. 8. 27.
아차산 [산을 닮고 싶다] 긴 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부지방에는 기상관측 이래로 최고의 폭우가 쏟아져 상처가 깊다. 슬기롭게 견뎌내야 할 몫이지만 쉽지는 않겠다. 우중에 비를 피해 오른 아차 산정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사방팔방 탁 트인 시야가 장마에 눅눅했던 가슴을 늘어 말리기에 딱 좋다. 황톳물로 가득 채워진 한강은 황룡이 용틀임하듯 꿈틀거리고, 키재기 하듯 아웅다웅 다투는 도심의 빌딩들은 감당하지 못할 폭우에도 아무 일 없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 삼국시대부터 전투의 요충지였던 아차산성 길을 걸으면서 인간들이 영역다툼에 목숨을 걸었던 역사를 되내어 본다. 며칠 전 막내아들과 사소한 다툼을 하면서 상한 자존심을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해 속상했다. 아내는 아버지가 참으라고 거드는데 참는 게 쉽지는 않다. 아.. 2022. 8. 15.
삼각산 홍시길 [매미야 울어라]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더운 날씨를 피해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생존 조건이 여의치 않아 생태계의 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귀찮게만 들리던 매미소리가 뚝 끊기니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든다. 부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요란하게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무더운 날씨에 습도가 높아 산행을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산등성이에 올라도 바람 한 점 없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매미라도 울어대면 바람이려니 생각하여 잠시 환기라도 될 텐데 기척이 없다. 풀벌레 소리도 숨을 죽이고 있는 산에는 산객들의 발자국 소리마저 습한 공기에 묻힌다. 비가 잦아 계곡을 넘실대는 힘찬 물소리만이 산이 살아있음을 강변한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이 식어가면 매미는 다시 울어댈 것이다. 그..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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