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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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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 운길산 예봉산을 가끔 오르긴 했지만, 운길산 까지 종주 산행을 해 본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예봉산, 운길산 종주 산행을 계획하고 팔당역에서 가파른 예봉산을 오르는데, 예나 지금이나 산은 변함이 없고 세월 따라 나만 변해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내가 좋아서 오르는 산이지만, 산은 한 번도 내게 좋다 싫다 내색한 적이 없다. 나는 산에 대해서 일방적인 짝사랑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누구를 좋아하거나 사랑할 때, 그에 응당한 대응이 없으면 실망을 하게 되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거두게 된다. 대가를 바라는 사랑이었다면 참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산에 대하여 보내는 무한의 사랑은 참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그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나는 그를 좋아..
운문산,가지산 영남알프스를 종주했던 17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가지산과 운문산을 다시 만난다. 긴 산행 길을 버텨내며 탈진한 상태에서 마지막 힘을 모아 가지산과 운문산을 올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영남알프스는 울주, 밀양, 청도, 양산을 아우르며 1,000미터 넘는 고산준봉들이 시위하듯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가지산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지산 정상에서 세상을 품어 안는 맛은 천하일미다. 가파른 가지산의 등로를 힘겹게 올라 잠시 호흡을 고르며 둘러보는 세상은 온 천지가 산이다. 척박한 산세를 기둥 삼아 삶을 이어왔을 조상들의 숨결이 연한 산그리매에 겹겹이 쌓여있다. 영남알프스는 설악산과 같이 웅장한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절경은 없다. 지리산처럼 푸근하고 넓은 품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넉넉함만..
지리산 종주(18)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시지 마라' 했거늘 나는 견딜만하지 못하여 다시 지리의 산문을 연다. 고행길 같은 산행을 할 때마다 힘들어하면서도 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냥 내 삶의 길이려니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견뎌낼 뿐이다. 새벽 3시 성삼재의 바람은 언제나 그랬듯이 얼씨년스럽다. 흐릿한 하늘에는 별들이 총기를 잃어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견한다. 가쁜 숨을 몰아 땀 한 줌 짜내며 오른 노고단의 공기도 만만치 않다. 울퉁불퉁한 밤 길을 손 전등에 의지해 걸음을 재촉한다. 산 길 30km 이상을 걸어야 하니 마음도 바빠 여유가 없었지만, 숲이 내어주는 달콤하고 신선한 공기가 위안이 된다. 삼도봉에 이를 즈음에 여명이 열..
계양산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움이다.친구를 만나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계양산에 오르자고 약속을 하고 산문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핑계를 내놓는다. 무릎에 물을 빼서, 발목에 통풍 치료를 받고 있어서 산행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둘레길이나 걷자고 한 바퀴 도는데, 흐린 날씨에 바람이 많은데도 사람들이 많다. 인천 시민들이 산 향기를 맛보며 호흡할 수 있는 쉼터인 셈이다.  알프스처럼 경관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나누기에는 계양산행도 모자라지 않다. 산행은 언제나 마음을 젊어지게 하는 묘수다. 친구들아! 무릎이 아프다고 움츠리지 마라. 아플수록 더 열심히 걷기를 추천한다. 연습만이 대가를 만드는 지름길이란다.  장미 향기가 진득한 푸른 계절에 ..
지리산 서북능선 성삼재에서 노고단과 반대 방향으로 산문에 드니,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강풍이 불어 산행의 긴장감을 더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일기라 대수롭잖게 여겨 옷을 가볍게 준비했었는데 실수였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한기를 떨치려 앞만 보고 허겁지겁 걷는다. 오르막 길에도 쉬지 않고 어두운 밤길을 헉헉대며 땀방울이 맺히도록 걷다 보니 다소 안심이 된다.  북두칠성, 전갈자리 등 별들이 초롱초롱한 깜깜한 밤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무슨 근심을 떨치려 입산하는 것일까. 각자 저마다의 아픔이나 근심이 있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꾹꾹 눌러 담고 산에 들면 신기하게도 세상 번뇌를 잊어버리는 맛에 중독된 사람들일 게야. 그래서 산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걸음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서북능선 길도 ..
비슬산 산은 결 따라 꽃이 피고, 꽃이 지고 하늘의 기운을 따라 비바람이 오가고 인간은 꽃을 만나고 싶었고 비바람을 피하고 싶었다. 비슬산에 가는 날 참꽃은 저물어 갔고 비는 종일 내렸고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산은 처음부터 그랬다 [산행 일시] 2024년 4월 20일 [산행 경로] 유가사 - 천왕봉 - 대견사 - 비슬산 자연휴양림(10.5km) [산행 시간] 4시간
북한산, 도봉산 [진달래꽃] 매향을 품은 매화 단아한 절제를 닮은 복사 순정을 얘기하던 순백의 이화 개구쟁이 투정을 닮은 노란 개나리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랴 만화방창 너 잘났네 나 잘났네 참꽃은 어쩌라고 설운 분홍빛 모진 바위틈에 눌러 담고 파리한 바람결에 살포시 게워내어 님 오시는 기다림 향기가 계면쩍다 [산행 일시] 2024년 4월 13일 [산행 경로] 불광역 장미공원 - 탕춘대능선 - 비봉능선 - 청수동 암문 - 대남문 - 대동문 - 백운대 암문 - 우이동 - 우이암 - 신선대 - 도봉역(25.4km) [산행 시간] 10시간 50분
덕룡,주작,두륜산 강진과 해남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호남의 알프스라 알려진 덕룡, 주작산의 봄. 진달래와 암릉의 멋진 조화가 아스라이 기억의 파일에 저장된 지 10년은 넘은 듯하다. 아름다운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몇 번 별렀지만 쉬 기회를 잡지 못했다. 서울 양재역에서 밤 11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졸고 있던 새벽을 깨워 도착하니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 빛을 쫓아 몰려든 부나방을 닮은 그들은 덕룡산의 암릉과 붉은 진달래의 마법에 걸려든 사람들이다. 오징어 배를 연상케 하는 전등을 밝히고 만선을 꿈꾸며 새벽 4시에 가파른 등로를 따라 걷는다. 희꾸 무례한 아침이 열리고 이윽고 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진달래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봉오리들이 서로 곁눈질하며 아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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