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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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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봉산 쉬어 가는 듯 앵봉산을 오른다.쉼표가 없으면 우리는 글도 읽지 못할 것이다.산행이나 운동에서도 쉬어감은 훈련의 또 다른 이름이다.쫓기듯 산에 오르고 호흡을 몰아가며 달리기 연습을 이어가다가,도심에 나지막이 봉긋 솟은 앵봉산에 올라 쉼표의 소중함을 일깨운다.장마 끝이라 습기가 많은 등로를 걸으니 땀이 비오 듯 쏟아진다.간간이 불어주는 바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어 살 만하다. 봉산에 오르면 북한산 전망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빼곡히 박힌 아파트 군락이 자리 잡았다.우리나라에서 저 많은 아파트는 어떤 의미일까.단순히 주거의 수단만일까.아니면, 또 다른 문화의 상징일까. 평창 올림픽 때 에피소드 한 소절이 생각난다.북한 관계자 안내를 맡아 가이드하는 중에,서울시내 퇴근길에 차가 꽉 막혀 꼼짝달싹 못하..
북한산 백운대 새벽 3시, 곤히 잠들어 있는 북한산 산문을 연다.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에서 출입을 통제하면 어쩌나. 조바심 섞인 호흡으로 기웃거리는데 기척이 없다.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일순간 긴장을 흩트려 놓는다. 전날 잠들기 전까지도 찌뿌둥한 습도와 짜증 섞인 더위를 떨쳐내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잠들었다가 새벽을 깨웠으니 하품이 길어진다. 깜깜한 새벽에 인기척 하나 없는 산길은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청량한 새벽공기를 가득 품은 소쩍새가 산이 쩡쩡 울리도록 울어대니 졸고 있던 하품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두려움도 누그러진다. 대서문 지날 때쯤, 초로의 남녀 서너 명 도란도란 산을 내려온다. 깜깜한 밤에 벌레 한 마리만 부스럭거려도 귀가 쫑긋하는데, 이 밤중에 웬 사람일까 하고 순간 긴장했..
광교산 내 나이 예순셋. 산에 오르면 나의 나이는 여전히 낯설다. 단풍이 들락 말락, 계절에 순응해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지만, 마음은 아직 푸른 하늘에 날개를 마음껏 펼친 앨버트로스를 닮은 파랑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산 위에 올라 우정을 만나면 철부지가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는 철 모르는 청년이다. 어느 순간 날개 근력이 쇠잔해지는 날에는, 더 날 수 없게 될 것임을 잘 안다. 남들의 시선에서는 빛바랜 푸른색이겠지만, 나 스스로는 아직 윤기 반지르한 청춘이다. 노인과 청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청년보다 젊은 노인이 있는가 하면, 노인보다 늙은 청년도 있다. 깻잎 한 장보다 더 얇은 간극의 청년과 노인은 같은 삶의 경로에 서 있어서 비켜가거나 둘러갈 수 없다. 그것의 구분이 큰 의미도 없겠..
우면산 장마철이라 장거리 산행을 피하고 접근이 용이한 우면산으로 간다. 자주 다니던 길도 가끔 가면 헷갈리는데, 사당역에서 오르니 완전히 생소한 느낌의 길이다. 우면산은 서울의 강남에 위치해 있으며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딱히 정상이라 할 만한 꼭지도 없이 그냥 편안한 능선길이다. 그런데 수년 전에 이 작은 도심의 산에서 산사태가 나서 엄청난 피해가 난 적이 있다. 출근 시간에 교통 통제를 제대로 못했더라면 피해가 아주 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쓸어내리는 기억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산사태 수습 후 대대적인 사방공사를 했다. 급류에 대비해 과하다 할 만큼의 물길을 내고 돌로 단단히 쌓았다. 작은 산에 상대적으로 큰 개울을 만들었으니 조금은 흉물스럽다. 그래도 재해를 대비해 눈에 거슬리더..
설악산 공룡 능선 내일의 빛을 품고 키우는 시간인 설악의 밤을 깨워 곤한 새벽을 연다. 며칠 전 마라톤 연습을 한 탓일까 발걸음이 무겁다. 산에 오를 때마다 버려야만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곱씹으며, 험한 산 길을 통해서 내 삶의 방향성을 찾는다. 깜깜한 밤길을 따라 발자국마다 땀으로 채워도 길은 끝나지 않겠지만, 그 길의 발자국에 옹졸하고 못난 내 마음자리 하나 내려놓는다. 대청봉을 만나기 전에 여명이 열린다. 구름이 많아 일출을 만날 수 없지만, 태양이 오르는 방향을 향해 무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대청봉에 오르니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세다. 힘센 바람을 견뎌내며 털진달래 군락지의 진분홍 꽃잎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옹골지게 붙어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험한 조건을 피하지 않고 맞서려 했을까. ..
양주 불곡산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양주역에 내리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동안 미답지로 남겨뒀다. 가까이 있어서 별 시답잖게 생각했던 산이었는데, 막상 샅바를 잡고 겨뤄보니 예사롭지 않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등 이름값 하는 산들이 많지만, 불곡산 또한 그에 못지않다. 상봉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평범한 육산의 면모를 갖췄다. 상봉 정상에 올라서면 그리 높지 않은데도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올라선 듯 사방이 탁 트인다. 하늘 맑은 가을날에 올라서면 참 좋겠다. 상봉에서 임꺽정 봉우리 까지는 암릉 구간이 많지만,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산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암릉 구간에는 기암들이 즐비해서 산행하는 맛이 짭짤하다. 동물농장을 연상케 하는 갖은 동물 형상을 한 바위..
지리산 종주(19) 깜깜한 새벽, 비가 오락가락하는 갈등을 재우며 지리 능선에 오른다. 나의 지리산 종주 산행은 단순하게 산을 오르는 행위라기보다는 엄숙한 의식이다. 지리에 대한 경외심을 시험하려는 듯 비와 바람과 어둠이 길을 막는다. 행여 일출을 만날 수 있으려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침이 열리는 삼도봉에 다다랐다. 해는 구름뒤에 가려 있고 운해가 끝없이 펼쳐져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탄성만 질러댄다. 얼마만의 영광인가. 장쾌한 산맥을 따라 걷는 걸음이 가볍다. 숲길에는 새소리 바람소리가 장단을 맞히고, 그 소리들 틈에 들리는 나의 숨소리를 저미며 자아를 뒤적거려 본다.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힘이 들지만, 햇볕과 구름, 새소리 바람소리가 반겨주니 토라질 이유가 없다. 운해는 종일 걷히지 않아 꼭 비행기를 타고 구..
대모산, 구룡산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린다.약속된 산행을 진행할까 말까 망설인다.일단은 산 밑에서 만나자며 문지방을 넘는다. 비가 많이 오면 막걸리나 마시자. 견딜 만큼 비가 내린다.산에는 산객이 많지 않다.정상에 오르니 보슬비가 오락가락한다.구름에 에워싸인 산은 시야가 막혔다. 비가 내려도 우리는 산에 오른다. 문지방만 넘으면 못 할 게 없다. [산행 일시] 2025년 5월 10일[산행 경로] 수서역 - 대모산 - 구룡산 - 달터공원(7.5km)[산행 시간]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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