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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538

삼각산 인생을 살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남이 보지 않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대체로 남을 속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주 가끔은 남을 속이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눈 내린 삼각산을 오르면서 숨 가쁘게 살아온 한 해를 되짚어 본다. 언제나 아쉬움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에게 더 솔직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변명을 덜해도 세상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육십 대에 접어드니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두렵기보다는 품이 넉넉해진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익숙함을 느껴본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했나 보다. 이제 유년기의 본성을 찾아가는 듯하다. 많.. 2023. 12. 27.
계방산 산에도 그리움이 있다.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 그리움을 따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한 겨울 계방산에 오른다. 메마른 감성 너머 향기마저 희미해져 가는 나 자신을 깨워보려는 아름다운 매듭이다. 이 길에서 사라져 버린 그리운 것들을 떠올린다. 애지중지 나만의 욕심이었는데, 내려놓고 나니 별 것 아님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산너울의 빛들을 오롯이 드러낸 겨울산에 엷은 먹빛을 들어 한숨으로 그려본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한 여름에 들이쉬었던 긴 숨을 이제야 뱉어낸다. 산호초를 만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온 산에 수정 같은 보물이 천지에 널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감탄을 쏟아내는 틈으로 욕이 섞여 나온다. 속앓이 같은 감동을 표현해 내는데 한계를 느끼면서도 행복하다. 난데없이 까만 까마귀 .. 2023. 12. 24.
삼각산 의상능선 겨울산은 솔직해서 좋다. 여름에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골짜기의 생김생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 다 내려놓았다. 의상능선 길에 올라서면 좌측으로는 원효봉이 의상봉과 키재기 하듯 봉긋 솟아 있고, 그 뒤로는 숨은 벽 능선을 따라 백운대가 위엄 있게 서 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을까 봐 까치발을 딛고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고개를 갸웃 내밀고 있는 인수봉은 귀엽기까지 하다. 백운대, 인수봉과 나란히 만경대가 삼각의 꼭짓점을 맞추고 있어서 우정이 돋보인다. 그 아래로 노적봉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버티고 있어서 든든하다. 고개를 들어 더 멀리 시선을 던지면 도봉산 오봉 능선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려는 듯 그리움을 닮아 있다. 우측으로는 응봉능선이 올망졸망 하늘과 경계를 .. 2023. 12. 4.
삼각산 성큼 다가 선 겨울이 낯설지는 않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가을은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 미처 준비가 모자랐던 단풍잎이 지난밤 된서리에 고운 단풍을 갈무리할 겨를도 없이 고스라졌다. 개울가에 오종종 어깨를 견주고 있던 파란 이끼가 투명하게 맺힌 얼음에 낯선 이마를 맞대고 있다. 가고 오는 세월을 따라 무뚝뚝한 나의 계절도 뒤뚱거리며 쫓는다. 겨울이 온다는 것은 봄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무언의 암시. 더디게 올 것을 알기에 보채지는 말자. [산행 일시] 2023년 11월 16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 중성문 - 대남문 - 구기탐방지원센터(9.5km) [산행 시간] 3시간 40분 2023. 11. 26.
월출산 월출산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산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월출산에 안기니 무지 반갑다. 그동안 잊다시피 지냈었는데, 사명社命을 받들기 위해 임지任地에 근무 중인 친구의 호의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대학 동창들이어서 꽤 오래된 우정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고 대면대면 연락만 유지하고 지내다가 근자에 와서 산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안부가 가까워졌다. 언제나 그랬지만 월출산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남도 지방에 자리 잡았지만, 그 높이가 809미터나 되어 결코 만만한 산은 아니다. 더구나 영산강이 느긋하게 휘감아 도는 너른 들판에 암릉들이 다투듯 우뚝 솟아 있어서 산 길을 걸을 때에도 한 눈 팔 새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안주 삼아 걷는 길은,.. 2023. 11. 13.
지리산 종주(17) 변화는 아름다움이다. 단풍 마중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겨울 산호초를 만났다. 상고대를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겨울 산을 뒤질 때에도 시절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뜻밖의 행운이 있어 가을산에 들렀다가 상고대를 만나는 기분은 별유천지다. 지리산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위해 가을을 열심히 밀어내고 있었다. 산에 닿으면 스트레스로 가득 찼던 가슴이 비워지면서 그 빈자리에 산향기로 가득 채워진다. 산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행여 견딜만하거든 지리산에 오지 말라했건만, 세상살이에서 견딜만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역설적이게도 지리산을 꼭 오라는 당부일 것이다. 나는 내 삶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산에 올라서 여유를 찾는다. 지리산을 처음 오르며 가슴 벅찼던 일을 떠올.. 2023. 10. 22.
남한산성 비 예보가 있어서 긴가민가 결정이 쉽지 않았다. 휴일에 비를 핑계로 집에 박혀 있어도 답답한 일이다. 비가 얼마나 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먹은 대로 결행하고 본다. 산성역에 하차하여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건강한 안부를 나누고 등로를 오른다. 등산객이 많지 않다. 비가 오락가락 하지만 맞을 만하다. 중간쯤 올랐을 때, 하품이 길어지는 친구가 있다. 판을 벌려 막걸리 두 어잔 돌리니 하품이 닫힌 입으로 수다가 늘어진다. 오랜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난 것 같고, 엊그제 만난 친구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관계는 참 편하고 좋다. 말을 세심하게 가리지 않아도 허물이 없으니 상처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남문에 이를 쯤에 비가 그친다. 안개가 장막을 열었다 걷었다 하는 서울 도심의 풍경이 이채롭다. 성곽을 따.. 2023. 10. 16.
소금산 출렁다리, 울렁다리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생활용 소규모 출렁다리가 세워진 것은 오래된 일이겠지만, 대규모 관광용 출렁다리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가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개장 당시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며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소금산 출렁다리를 기점으로 전국의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 관광용 출렁다리를 다투어 세우기 시작했다. 인기를 구가하던 출렁다리가 전국에 다수 생기면서 체험자가 늘어나고, 어느 순간 발길이 뚝 끊겼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기획했던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애물단지 속앓이가 늘어났다. 어떤 콘텐츠가 인기가 오르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아류들이 순식간에 생겨나서 타오르다가 한꺼번에 식어버리는 습성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속성이기도 하다. 원주시에서는 소금산 출렁다리를 시작으로.. 2023. 9. 11.
검단산ㆍ 용마산ㆍ 남한산성 [가을 마중] 바람이 분다 눈먼 가슴 쓰라린 꿈 속으로 가을바람이 분다 막걸리 한 사발에 허기를 달래던 나무꾼 짓눌린 어깨를 추스르려 바람이 분다 파란 하늘 하얀 바람 산구름 따라 바람이 분다 향기 감춘 개미취 바람 따라 흔들리다가 동그란 눈을 말아 흘긴다 밤송이 툭 터져 가을이 흔들린다 엊그제 바람 불 때 마음을 꼭 잡고 여몄어야 했는데 바람은 가을에 흔들리고 가을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늦여름 모기 한 마리 밤새 칭얼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이 분다 * 산 길에는 더위와 장마를 견뎌낸 밤송이가 익어가고 도토리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한낮에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성성하지만 조석으로 가을이 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가을이 오면 할 일이 많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허둥댄다. 인생이 그랬.. 2023. 9. 3.
도봉산 오봉 장마 지나간 자리에 버섯이 보송보송 올라오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태풍이 한두 번 더 지나고 나면 우리는 지난여름을 옛일처럼 기억하여야 한다. 더위와 폭우가 유달리 심했던 여름이었기에 그만큼 상처도 깊었다. 도봉산 골짜기마다 깊게 파인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다. 올 가을에는 아마도 버섯은 풍년이 될 것이다. 우리 남은 인생에서 올해가 가장 시원한 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 학자들이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호들갑이지만, 지구 스스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미동도 없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까닭은 인간들이 탄소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을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분위기를 몰아가는 데는 대체로 성공하고 있는 편이다. 나는 기후 위기론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2023. 8. 29.
설악산 큰 형제봉 산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미움이 생기지 않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반드시 미움이 움튼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반드시 그만큼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은 가만히 있을 뿐, 사랑해 달라고 안달하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오는 만큼의 관심과 사랑이 상대방에게도 전달되어야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아서 미움이 생기지 않는다. 나에게 산은 마음껏 사랑을 주어도 행복해지는 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 자식을 닮았다. 산행을 하면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를 만남으로써 행복한 사람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산과 그리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 2023. 8. 21.
삼각산 [행복]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나 없는. 흔하면서도 귀하고 귀하면서도 흔한. 욕심을 부리면 챙기기 어렵고, 내려놓고자 하면 얻어지는.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이 있고, 가까이 있는 듯하면서도 멀리 있는. 친하고 싶을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산행 일시] 2023년 8월 14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탐방센터 - 북한동 - 중성문 - 용암문 - 대동문 - 동장대 - 대성문 - 대남문 - 문수봉 - 청수동 암문 - 삼천사(12.5km) [산행 시간] 6 시간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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