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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신화神話

by 桃溪도계 202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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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다음

 

 

"대 ~ 한민국! - 짝짝 짝 짝짝!"

지축을 흔들어 영혼을 깨우는 함성이 밀려온다.

신화가 시작되던 반만년을 거슬러 핏속으로 흐르는 전율에 내 몸을 던진다.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재워두었던 민족의 혼이 뜨겁게 달궈진다. 신화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신화는 의도된 말재주나 글 솜씨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민중들의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여 있던 무지개 같은 영혼이 용암처럼 분출될 때 탄생한다.

 

역사 같은 신화 - 이 한 편의 드라마가 각색되어 우리들 가슴에 각인되기까지는 엄청난 에너지가 불출되어야 하고, 그에 세월의 때를 더해야만 신화 같은 역사로 전해 오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혼이 꿈틀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월드컵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멋진 신화 한 편을 조각한다. 

 

그것은 달콤하거나 짜지 않으며, 싱겁거나 맵지도 않다. 눈에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아 그 색깔과 형체를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오감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가슴속에서 저며 오는 그 무엇이다.

 

신화는 인간 세상과는 별개로 신들의 이야기로만 인식되었다. 인간의 재능으로는 그 원인과 동기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한 편의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치부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상상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신의 몸짓을 빌려온 것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신화를 잉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들을 보았다.

 

2002년 6월, '대 ~ 한민국' 붉은 함성의 지푸라기들이 푸른 어둠을 만들어가는 새벽.

그 역사 속에서 신화의 주인공이 된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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