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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63

시실리時失里의 하계夏季 시실리時失里의 하계 수야리 울타리의 시간이 멈춰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고향을 기억할 때마다 예전의 몸과 마음을 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쓸수록 시간이 지난만큼 공간도 아득하게 멀어져만 간다. 듬성듬성 성미 급한 몇 몇 송이가 철 이른 연밥을 매달고 따가.. 2008. 10. 13.
以金制朴 이김제박 맥주병에 거품 빠지듯 김씨와의 인연이 싸늘해질 즈음 박씨가 왔다. 살아갈수록 너덜너덜해지는 조각난 행복을 맞추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김씨는 부모님이 병중에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 대뜸 현장소장 직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해왔다. 김씨만 믿고 별다른 준비 없이 꾸려왔는데 그만두겠다니 그럼 어쩌란 말이냐. 많이 달래었지만 허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이겠거니 생각하고 더 이상 그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내 곁을 떠났고 나는 하늘이 때로는 어두운 이유를 가슴에 하나 더 선명하게 새겼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 공백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힘 드는 시기였다. 그때 조그만 가게를 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신용불량에 걸려 어깨가 축 처.. 2008. 9. 26.
여백이 있는 아침 새벽 등산길을 오르면서 아침을 깨우는 내 자신을 대견스러워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여명을 헤치고 도시의 아침을 깨운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않은 자부심이었다. 새벽까지 목구멍으로 술을 들이부어대던 날 아침에는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벌떡 일어나곤했다. 숙명같은 아침을 깨우려 함이었다. 올이 풀린 소매자락에서 풀려나오는 실을 온 몸에 칭칭 감아대며 한 줄의 시를 부여잡고 밤새도록 불을 밝히던 날 새벽에는 지친 아침을 재우기도 했다. (2008년 3월 16일...청계산) 나의 아침은 내가 깨워야만 일어나는 연약한 이불이었다. 그런 아침을 나는 사랑하였다. 그러나, 지난 겨울내내 나는 아침을 깨우지 않았다. 내가 게으른 탓이겠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2008. 3. 16.
거추장스러운 행복 행복의 크기와 형태는 다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이 커야만 반드시 만족감이 커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겨자씨 같은 작은 행복에도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태워서 행복을 찾는다. 수많은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하며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사막에서 한 모금의 물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절박함에 지친 사람들은 때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렇다. 단 한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이 척박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IMF 시절에 나라는 온통 혼란 속에 빠졌다. 물질적인 행복은 고사하고 정신적인 행복도 포기해야 할 정도로 황폐화 되어 가고 있을 때, 나는 작은 중소기업에 관리자로 근무하면서 고민이 쌓여가던 .. 2007. 12. 14.
부부의 연 부부의 연 아무렇게나 생긴 모과처럼 세상이 많이 삐뚤빼똘해졌다. 부부는 하늘이 내린 인연이다. 하늘의 염력이 모자란 탓일까. 최근 들어 우리사회는 부부간의 인연의 끈이 튼실하지 못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소득수준과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이 맺어준 인.. 2007. 11. 12.
건전지 인생 건전지 인생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건전지 없는 삶은 단팥 빠진 찐빵이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건전지의 독성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마약 보다 더 강한 중독성 흡입력을 갖고 있어서 권력과 돈으로도 건전지의 마취에서 깨어나기란 쉽지 않다.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지리산 산행을 한 적.. 2007. 10. 4.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름다움 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아름답다’라는 표현만큼 정감 있고 내 정서를 자극하는 적절한 말은 없다.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전달되는 감정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가슴속에 재워두었던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느낌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가로수 길을 자전거로 통학하는 학생의 희망. 지친 노동을 마치고, 손자들 재롱을 꺼내보며 흐뭇한 땀을 훔치는 농부의 미소. 가을바람에 부산히 쏟아지는 낙엽을 말없이 주워 담는 환경미화원의 부르튼 손. 새벽시장, 장작불에 언 손을 녹이며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의 입심. 헤어진 가족이 반세기 만에 만나 이산의 아픔을 절절히 토해내며 부둥켜안고 쏟아내는 울음.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의 점심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바쁜 .. 2007. 7. 25.
고구마 도시락 고구마 도시락 바위같이 단단하고 호랑이같이 무서웠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어머니의 둥글둥글한 웃음 속에는 기쁨보다는 삶에 대한 회한이 더 많이 잔주름에 묻히는데도, 운명처럼 기 대려고만 하면서 살아가는 내 자신이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내 가슴속에 커다랗.. 2007. 7. 12.
달맞이 꽃 달맞이 꽃 달빛에 비친 눈물방울이 달빛 따라 흩뿌려지면 꽃망울이 된다. 밤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양재천 둔치의 그리움 속으로 어둠이 내리면, 뽀송뽀송한 솜털로 수줍은 화장을 하고 달빛을 기다리는 그대의 사랑에 탄복하여 오늘도 달은 지구를 떠나지 못한다. 유월의 뙤약볕에 탈진해 쓰러질듯.. 2007. 6. 28.
별 헤는밤 별 헤는밤 별을 마음에 담을 수는 있으나 헤아릴 수는 없다. 별빛이 유난히 초롱거리던 여름밤, 딸아이가 평상에 누워 손가락으로 별을 헤고 있다. 하나, 둘, 셋....., 딸아이는 팔이 아프도록 헤아려보지만 쉽지 않다.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기를 반복 한다. 별을 헤아리다가 지칠 즈음 "아버지 저 별들을.. 2007. 6. 12.
아내의 투병 아내의 투병 곪았던 고름이 터지듯 폭발해 버렸다.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갑갑하다. 평소에도 종종 있어왔던 작은 아픔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악을 쓰며 쓰라린 눈물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아내는 치밀어 오르는 고.. 2007. 5. 31.
仙界의 하루 선계仙界의 하루 해질녘, 어깨에 걸친 대나무 낚싯대 끝자락에 붉은 해를 걸고 저수지로 향한다. 노을을 배경삼아 연한 웃음을 머금고 걷는 노인의 어깨엔 세월의 무상함과 시대의 질투심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낚싯대 끝에 매달린 해는 노인의 회심懷心을 놓칠세라 연신 달랑거리며 바짝 따라 붙는.. 2007.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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