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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아내의 투병

by 桃溪도계 200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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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투병


   

    곪았던 고름이 터지듯 폭발해 버렸다.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갑갑하다. 평소에도 종종 있어왔던 작은 아픔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악을 쓰며 쓰라린 눈물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아내는 치밀어 오르는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갔다. 응급한 상황이었다. 이러쿵저러쿵 병명을 물어 볼 경황도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섣불리 응급처치에 나섰다가는 병을 더 악화 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멍하니 있었다. 결혼생활이후 처음 겪어보는 병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아내의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본인만이 아픈 가슴을 움켜잡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화스럽게 연기를 해왔다. 관객들이 깜빡 속았으니 연기는 잘 하는 편이다. 아니다. 다소 서툰 연기에도 관객들은 지나친 관용으로 이해하려 했겠지. 그것도 아니면 배우에게 시비를 잘못 걸었다가는 쫓겨 날 수도 있는 두려움을 피했던 거겠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은 버리고 행복만을 움켜 쥘 수는 없다. 좁쌀만한 행복을 줍기 위하여 많은 고통을 삭여가며 인내를 배운다. 도대체 행복이란 놈은 어떻게 생겼나. 이놈은 성질이 팥죽 같아서 가슴에 진득하게 머무는 법이 없다. 인간들이 목숨 걸고 좋아하는 돈이나 권력 알기를 우습게 아는 배짱이 두둑한 놈이다. 사랑도 행복 앞에서는 치사하게 허리춤을 추스른다. 그러고 보면 행복이란 놈은 성질이 더럽고, 천하에 두려울 게 없이 제 잘난 맛에 흠뻑 빠져 사는 놈이다. 인간들은 그런 놈과 친해지려고 안달복달 타령이다.

  

   행복 이라는 놈의 콧대 높은 자존심이 얄밉다고 불행을 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내는 행복 이라는 놈과 대판 싸웠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불행해진 것이다. 급기야 살아야 할 명분마저 퇴색되어 봄바람에 벚꽃 잎 날리듯 떨어진다. 가족의 사랑 같은 건 사치다. 순간, 죽어버리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느낀다.

  

   아내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쓸 수 있는 행복이 필요했던 것이다. 행복은 고사하고라도 주변이 온통 불행에 점령당한 현실이 미웠고 두려웠다. 점점 더 자신을 죄이며 엄습해 오는 불행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형체도 맛도 냄새도 없는 그 놈의 불행이 등을 떠밀어내는 힘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쌀쌀한 도심의 밤거리로 나섰다.

  

    도심의 밤거리는 휘황찬란하게 화려한 모습들이 우선은 행복해 보였지만, 그들도 결코 행복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쌈지 속에 숨어서 겨우 숨만 팔딱이며 마지막 자존심처럼 남아 있는 작은 행복마저 농락당할 것 같다. 이 씨 톨 같은 행복마저 잃어버리면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소름으로 돋는다.

  

   집으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꼼짝도 못할 것 같다. 입맛도 없을뿐더러 초라한 자존심 때문에 먹는다는 게 유치하게 느껴진다. 아내는 불행의 고통으로부터 행복을 찾으려고 투병에 들어갔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그동안의 서러움을 되새김질 하면서 악을 써 가며 협박했다. 아내의 아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대꾸 없이 나는 집안일을 돌보고 아내의 병을 간호하였다.

  

   아내는 옴짝달싹 않고 자신을 돌이키며 몸져누워 있었다. 세상과 주변의 불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앓았던 고통은 차츰 호전되어 견딜만했는데, 결국 자신을 속박하는 불행이 자신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고통을 이길 힘도 모자랐지만, 숫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병석을 털고 일어나고 싶지만 명분 찾기가 쉽지 않다. 불행을 쫓아버린 것도 아니고, 희미하게나마 행복의 가닥을 잡은 것도 아니다. 중년의 여인들이 호사스럽게 앓는 스쳐가는 아픔이었다면, 조각 사랑을 채워서라도 행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한들 시들어 가는 가슴으로는 사랑을 키울 수가 없다.

  

   허기진 사랑을 채우려고 사흘 만에 일어났다. 아내는 웃자라는 아픔을 억지로 묻었다. 불행이 엄습해 오면 감당하지 못하고 혼돈으로 쓰러질 것이다. 아내의 불행을 치료하는 길은 사랑 밖에 없다. 아내는 남편의 더 많은 사랑으로 행복을 찾으려 애쓴다.

  

   아내가 필요한 만큼의 사랑을 무한정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구걸 해 올수도 없는 일이다. 믿는 거라곤 아내의 지혜로움이다. 아내는 둔탁한 남편의 가슴을 다독여 아름다운 사랑을 마음껏 샘솟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슬기로운 사랑을 양껏 채워 가리라 믿는다. 물론 힘에 겨우면 또 다시 지쳐 쓰러 질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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