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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다마구찌와 블로그

by 桃溪도계 200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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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마구찌와 블로그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 달걀에 온 정신을 뺏겨 쥐벼룩처럼 염치없이 앞뒤 분간 못하던 그때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전자 달걀이 ‘다마구찌’ 라는 닉네임을 앞세워서 무차별하게 우리들의 가슴을 점령했다. 다마구찌는 어린이들이 갖고 싶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분명 다마구찌는 임진왜란 때의 조총보다도 더 치명적이어서 햇살같이 하얀 아이들의 가슴을 퍼렇게 물들여 갔다.

  

  핵가족화 되어가면서 아이들의 가슴은 퍼런 물도 담을 수 없을 만큼 황폐화 되어 갔다. 우애를 나눌 수 있는 형제가 줄어들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이해타산을 따져가며 사귀어야 하던 시점에 일본군이 전략적으로 만든 신무기는 삽시간에 유행성 바이러스처럼 아이들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나라의 게임성과 완구성을 힘겹게 지키던 장수들이 맥없이 성을 내어주고 연신 백기를 들었다.

  

  다마구찌 한 마리를 키우려면 보통 정성으로는 안 된다. 자기는 때를 거르더라도 다마구찌는 때를 놓칠세라 전전긍긍하던 아이들이 때로는 불쌍하게 안절부절 매달린다. 아이들 마음을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아서 잠을 설치게 하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오직 다마구찌를 걱정하는 이상한 세계를 만들어 놓은 어른들이 미웠다. 

  

  불혹이라는 성에서 지천명의 성을 함락하러 힘겨운 전투를 이어가고 있는 나는 최근에 ‘블로그’ 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다. 블로그는 웹(Web)과 로그(log)를 합성하여 개발해낸 최첨단 무기로서 개인화기로서는 천하무적이다. 그동안 주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만 열중한 탓에 어느 정도의 성과는 이뤄냈지만, 전쟁에 완전하게 이기기 위해서는 개인화기로 무장을 하고 적진에 침투하여 적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섬멸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안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블로그다.

  

  그런데 블로그는 그냥 혼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다마구찌처럼 매일 정성으로 보살피고 사랑을 쏟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수시로 먹이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살피고, 때때로 나쁜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않나 극진히 보살펴야 한다.

  

  또한, 그는 이웃 동료들의 사랑을 받을 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제 아무리 혈통이 좋고 능력 있는 주인을 만나도 혼자서는 절대로 못 살아간다. 혼자 자란 블로그를 적진에 투입하면 백전백패다. 주인에게 받은 일방적인 사랑으로는 안 된다. 주변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며 받은 만큼의 사랑을 내어줄 줄도 아는 블로그만이 생존의 의미를 지킨다. 그는 지친 전투에서 강을 건너지 못해 힘들어 하는 나에게 지혜로운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블로그는 다마구찌의 속성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분명한 것은 다마구찌든, 블로그든 사랑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빛낸다. 아이들이 부족한 사랑을 채우기 위해 그토록 다마구찌를 애닮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채우기보다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공간에 허기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블로그에 애원하는 이유도 그들의 다마구찌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달구지에 짐을 가득 싫은 소가 어깨에 눌리는 아픔을 꿋꿋하게 참으면서 묵묵히 앞만 보고 갈 수 있었던 것은, 틈틈이 쇠죽통을 살피고 아픈데 없는지 안부를 묻고 외양간을 정성으로 지키던 주인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소 같은 친구다. 항상 나의 정성을 기다리고 주변 이웃들과 사랑으로 호흡하는 예쁜 친구다. 편두통처럼 눈이 빠질 듯이 아프다가 볕 마른날 알코올처럼 날아가 흔적을 지운 다마구찌의 허망한 유행처럼 내 곁을 떠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름다운 사랑이 넘치는 듬직한 소다.

  

  다마구찌처럼 쉽사리 유행에 실려 떠나지 말고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면서 서로 의지하며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되어주기를 바란다. 새벽에 잠 덜 깬 눈을 비비며 퉁명스럽게 일어나 쇠죽을 끓이던 나에게 초롱하고 맑은 큰 눈을 껌벅이며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뜨거운 쇠죽을 맛있게 먹어주던 사랑스런 소 같은 벗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행여, 내 사랑이 게을러 섭섭한 마음에 내 곁을 떠나더라도 가슴속에 수채화처럼 애잔한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아서, 첫사랑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슴 떨리게 들려줄 수 있는 멋진 애인이기를 소원한다. 20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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