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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仙界의 하루

by 桃溪도계 2007.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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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仙界의 하루


   해질녘, 어깨에 걸친 대나무 낚싯대 끝자락에 붉은 해를 걸고 저수지로 향한다. 노을을 배경삼아 연한 웃음을 머금고 걷는 노인의 어깨엔 세월의 무상함과 시대의 질투심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낚싯대 끝에 매달린 해는 노인의 회심懷心을 놓칠세라 연신 달랑거리며 바짝 따라 붙는다.

  

  저수지에 다다랐다. 하늘은 고요하고, 산그늘이 드리워진 수면위로 잔잔한 파도가 나폴거리며 캔버스에 채색되듯 바쁜 붓놀림이다. 채비를 끝낸 노인이 호흡을 가다듬고 힘을 몰아 낚싯대에 해를 달아 던진다. 해는 ‘피지직’ 소리를 내며 저수지 깊숙이 녹아든다. 세상은 어두워 졌다.

  

  춘삼월 꽃샘추위가 살 속을 파고든다. 찌도 없는 낚싯대를 걸쳐놓고 어둠이 짙어지는 물 겨울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온갖 상념들을 미끼로 던진다. 사랑과 명예, 질투와 관용, 부와 배고픔, 행복과 불행, 권력과 허식, 전쟁과 평화, 조상과 자식, 이기심과 이타심, 인간과 역사, 역사와 나를 던진다.

  

  입질 서너 번에 별 서너 개 낚아 올려 하늘에 걸었다. 찌가 없지만 한 번도 실수하는 법이 없다. 된장국 끓여놓고 아랫목에서 기다릴 할멈이 보고 싶어 질 즈음 큰 입질을 느꼈다. 힘껏 낚아챘다. 커다란 달덩이가 걸려들었다.

  

  낚싯대 끝에 탐스런 달을 달고 집으로 향한다. 달덩이는 묵직하게 덜렁거리며 노인을 쫒아간다. 할머니는 반색을 한다. 내일 아침에는 가마솥에 달을 넣고 푹 고와서 영감님 보신할 생각에 꿈자리가 뿌듯하다.

  

  인간세상이나 선계나 행복의 조건은 그리 까다로울 게 없다. 명예, 부, 권력. 그 어떤 것으로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게 참 행복이다.

 

  선계의 하루는 또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침 안개 속으로 해를 몰고 오며 시작될 것이다.

  행복은 꾸며지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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