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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緣물연 삼 년 전 큰 아들의 중매로 너를 처음 만나던 날이 기억난다. 매끈하게 잘 생긴 몸매에 흠잡을 데 없이 깐깐한 목소리를 창창하게 뽐내던 너에게 난 첫눈에 반했어.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어리바리하게 실수가 잦은 나는 네가 귀에서 빠졌을 때, 눈에 잘 띄어야 찾기 쉽겠다 생각해서 분홍색인 너를 선택했던 거야. 며칠 전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잖아. 버스정류장에서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 없이 멍하니 서 있었는데, 너는 답답한 귓바퀴를 뛰쳐나와 또르르 굴러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 뒷바퀴 앞에 딱 멈춰 선거야. 눈을 마주치고는 얼른 잡고 싶었는데 버스가 움직일까 봐 어정쩡하게 고민하고 있었어. 재빨리 버스 기사한테 문을 두드리고 너를 건졌어야 했는데, 아주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선택하지 못했어..
2022 선사마라톤(Half 31) [마라톤은 친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다. 마라톤 대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꾹 참아왔는데, 이제 빼죽이 문을 살금살금 열어본다. 오프라인 대회에 참가한 지 삼 년 만이어서 기대가 되고 설렌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십오 년은 족히 되었으니 마라톤은 나의 소중한 친구다. 그런데 시절이 수상하여 생이별을 했다가 다시 재회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하지만 긴 시간 마라톤과의 간극이 존재했기에 은근히 두렵기는 하다. 그렇지만 함께했던 친구들과 손잡고 가는 길이어서 작은 두려움을 감출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마라톤을 함께하는 친구들은 솔직히 친구라기보다는 올해 85세니까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다. 그런데도 건장하게 대회에 참가하셔서 함께 뛰고 응원을 보내..
삼각산 파랑새 능선 처음부터 평탄한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삼각산 파랑새 능선도 그런 길이었다. 파랑새 능선은 길이라기보다는 다니지 말라고 경고를 붙인 禁道다. 인류가 발전을 거듭해 온 가장 큰 요소는 모험심과 호기심이다. 발전과 변화를 통하여 계속 진화하게 되면 종국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 무뎌지고 희석되어 인간 본성의 경계가 흐려지면 모험심과 호기심이 소멸하게 되는 시점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때는 동물과 별 다를 게 없는 하나의 생명체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는 아직 모험심과 호기심이 살아있으니 우리는 항상 긴장하며 낯선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삼각산 파랑새 길은 나에게는 무척 긴장되며 설렘이 많은 미지의 개척지다. 전 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에 대..
우이령길 [충고와 경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에게는 친구와 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는 충고를 줄 수 있고, 적은 경고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충고와 경고는 삶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음을 깨우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충고와 경고를 싫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충고를 잘 못하게 되면 관계가 어정쩡하게 되거나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불편한 역할을 친구에게 맡긴다는 것은 친구라는 관계가 그나마 완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듣기 싫더라도 친구의 충고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나마도 못하면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한 달에 한 번 별러서 산행길에 나서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이령 길에는 하늘이 맑지 않다. 그렇지만 시..
코로나 백신 유감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해 본다. 일반적으로 백신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완료하여 접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길게는 십 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은 예외였다. 코로나가 발병된 지 일 년 만에 세계 모든 백성들은 백신을 맞아야만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기에는 백신을 구하지 못해 정부에서도 우왕좌왕하였으며, 우리나라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 흔한 감기에 대한 백신을 아직도 변변찮게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백신을 개발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이 확실하다. 그리고 모든 백신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임상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백신을 맞기 위해 다투어 팔을 걷어 부쳤으니 백성들..
삼각산 [서두름] 산을 오를 때마다 쫓기듯 빨리 오르려고만 한다. 산을 내려올 때도 오르막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 조급하게 서두른다. 의사나 운동 전문가들이 빠르게 걸어야만 운동이 더 많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충고를 한다. 하지만 산에만 들어서면 경쟁하듯이 빨리 가려고만 한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신호가 바뀌면 조급한 마음에 빨리 서두른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산을 빨리 오르려고 조급해하거나 신호등에서 신호가 바뀌어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산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신호등은 다시 바뀌니까 서두르지 말자. [산행 일시] 2022년 9월 12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 중성문 - 대남문 - 북한산성 입구(8.5km) [산행 시간] 3시간
어머니의 명절 아들 셋을 둔 어머니의 명절은 언제나 짧았다. 명절 하루 전날에는 아들 가족들이 밀물처럼 우르르 몰려와 방방마다 재잘거리며 수다를 그득 채우면 어머니의 만면에 넉넉한 미소가 저절로 생긴다. 명절 아침 차례가 끝나자마자 아들 내외는 처가에 들러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허겁지겁 서둔다.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쌀, 고추, 감, 대추, 푸성귀, 매실진액, 감식초, 양파, 파, 고구마, 사과, 배, 석류 등 귀한 것들을 차가 미어지도록 실어도 어머니의 가슴에는 허전함이 남는다. 썰물 빠지듯 아들 가족들이 떠난 자리에는 허망한 빈 가슴에 외로움이 깃든다. 명절을 맞기 위해 지난 명절이 끝난 날부터 손꼽아 기다렸는데 딱 하루 만에 시끌벅적한 명절이 끝나버리고 삭정이 같은 그리움만 남는다. 남들처럼 딸이 있었으면 아들..
그리움 태풍 진자리에 열사흘 상현달 엄마를 기다린다. 아들이 오면 보름달이 될 텐데 낼모레면 코뚜레도 꿰지 않은 송아지를 닮은 아들이 올 텐데 올 것을 알지만 오늘은 그립다. 덜 여문 달을 보니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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