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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삼각산 파랑새 능선

by 桃溪도계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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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평탄한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삼각산 파랑새 능선도 그런 길이었다. 파랑새 능선은 길이라기보다는 다니지 말라고 경고를 붙인 禁道다.

인류가 발전을 거듭해 온 가장 큰 요소는 모험심과 호기심이다. 발전과 변화를 통하여 계속 진화하게 되면 종국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 무뎌지고 희석되어 인간 본성의 경계가 흐려지면 모험심과 호기심이 소멸하게 되는 시점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때는 동물과 별 다를 게 없는 하나의 생명체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는 아직 모험심과 호기심이 살아있으니 우리는 항상 긴장하며 낯선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삼각산 파랑새 길은 나에게는 무척 긴장되며 설렘이 많은 미지의 개척지다. 전 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나선 길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위험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움츠러드는 기운을 어쩌지 못하겠다.

몇 군데의 릿지 구간을 지나고 나서 파랑새 바위 밑에 섰다. 역광을 받고 있는 파랑새는 하늘과 닿아 있어 까마득하게 보인다. 두려움이 엄습하는 난이도가 꽤 높은 릿지 구간이다. 자일을 깔고 바위를 오르는데 순간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면 뒷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낭떠러지다. 호흡을 정리하고 한 발 한 발 집중하며 올라 파랑새를 안았다. 두렵고 위험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짜릿하다. 솔직히 더 이상의 난 코스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름 설악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릿지 길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최상급의 난이도다.

마지막 고비, 백운대 서쪽 암벽인 서벽 밴드 앞에 섰다. 거대한 암벽을 가로지르는 구간인데 코스가 꽤 길다. 설치해 놓은 와이어로프에 전신을 의지해서 건너가야 한다. 아래를 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직벽에 가까운 암벽 길에서 아래를 보면 발바닥을 떼지 못해 건너갈 수 없을 것 같다. 천 길 낭떠러지 암벽을 건너가기 위해 로프 하나에 운명을 걸어야 한다. 앞서 가는 동행인의 발자국과 동작을 학습하면서 발을 내디려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돌아갈까 망설였다. 그런데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파랑새 릿지 구간과 장군봉을 우회하여 지나왔던 위험한 구간을 도움 없이 혼자서는 되돌아갈 수가 없다. 사면초가다.

다시 호흡을 모으고 정신을 바짝 차려 앞으로 전진. 절대 서두르지 말고 혹시 디딤발이 삐끗하더라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오직 나에게 집중하자. 로프를 잡은 양팔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다시 힘을 빼며 약간 느슨하게 로프를 잡고 자신을 컨트롤하면서 건넌다. 마지막 발을 디딜 때 대장이 손을 잡아주는데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후유, 한 숨을 크게 쉬고 뒤돌아 보는 길에 구절초가 예쁘게 반긴다. 앞으로는 이렇게 위험한 길은 나서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잠재해 있던 모험심과 호기심이 기지개를 켜면 또다시 길을 나서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고개를 젓는다. 목숨 걸고 할 짓이 아닌데 왜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지만 메아리도 들리지 않는다.
파랑새 능선에 파랑새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의 호기심은 큰 의미가 없다. 꾹꾹 구겨서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두고 누가 릿지 산행을 가자하면 모른 체하고 먼산을 보자.

[산행 일시] 2022년 9월 18일
[산행 경로] 밤골 입구 - 국사당 - 파랑새 바위 - 어금니 바위 - 춘향이 바위 - 시발 클럽 - 서벽 밴드 - 위문 - 우이동(7.7km)
[산행 시간] 7시간 50분

숨은벽 고래등 바위와 도봉산(좌측)

 

오리나무
며느리밥풀
인수봉
파랑새 릿지
파랑새 바위
미역취
어금니 잇몸 구간
어금니 바위
염초능선(우측)
장군봉
인수봉
장군봉 우회 슬랩구간
춘향이 바위
노루궁뎅이 버섯
서벽밴드
서벽밴드
서벽밴드
만경대
백운대
구절초
위문
참취
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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