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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지금 걷는 이 길은 꽃길입니다. 선조들이 묵묵히 걸어온 고생 길이 꽃 길이 되기까지 오백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왕릉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생물자원도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훌륭한 공원을 선물 받았습니다. 휴일을 맞은 서오릉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봄볕을 따라 걷는 모습들이 너무나 여유롭고 행복해 보입니다. 서오릉을 산책하면서 작년에 다녀온 영국의 유명한 Park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영국 시내에 있는 공원들은 평지에 조성되어 있고,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차 있어서 압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비치복 차림으로 자..
2023 경기 마라톤(Half-34) [마라톤은 연습이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하여 수원 화성과 정조대왕의 융건릉 주변을 달리며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넘나 든다. 햇살 고운 봄볕을 따라 시내 차도를 차단하고 일 년에 딱 한 번 마라토너에게 길을 내어 주는 특별한 행사이다. 그런 점에서 마라토너에게는 행운이며 특권인 것이다. 시내 주요 간선도로를 차단하다 보니 시민들의 불편이 많아 군데군데 볼멘소리로 목청을 돋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원시민들의 묵시적 동의를 얻어서 하는 행사이니 만큼 마라토너들은 개의치 않고 당연한 특권을 행사하듯 무심하게 달린다. 물론 자신과 싸워 가면서 외롭게 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달리는 중에는 주변의 사사로운 잡음은 들리지 않는다. 오직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
삼각산 원효봉 [행복한 꿈] 북한산성 입구 화장실에 들러서 큰일을 보던 친구는 뒤늦게 깨달았다. 흔히 접해보지 못하던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아차! 여자 화장실이다. 숨죽이며 바깥 동태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는 틈을 타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좀 전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북한산을 품고 빙그레 웃고 있다. 인간은 때때로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러 놓고 그 일을 해결하느라 긴박한 에너지를 쏟고는 성취감을 느끼는 습성이 있다. 어쩌면 친구도 그런 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무 생각 없는 듯 태연하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그 난감함을 극복하느라 짜릿한 감정을 즐겼던 것일까. 아침부터 난처함을 해결했으니 산행 내내 발걸음이 가볍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다. 다음에 또 그..
언 놈이여! 사월 초순의 한재 미나리 골은 아직 봄기운을 다 펴지 못해 냉기가 골짜기마다 남아있다. 아침 해가 병풍을 열고 말갛게 고개를 내밀어 골짜기를 비추면서 고모부님의 칠순 잔치가 시끌벅적해지며 흥이 돋는다. 아무래도 잔치는 고모부님 친구 분들이 주축이다. 식사를 하고 술잔을 돌리면서 바쁜 안부를 챙긴다. 술잔이 늘어갈수록 건들건들 허리춤이 느슨해지고 혀가 길어지면서 취기가 돈다. 처음 해보는 칠순 잔치라 앞뒤 순서가 분명하지 않고 다소 뒤숭숭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흥겨운 자리에 작은 흠이 있으면 무슨 대수일까. 형식이 많아 따분하고 지루하던 행사가 대충 끝나고 뒤풀이에 들면서 놀자판이 되었다. 아들아 딸아, 며느리야 사위야. 놀아라, 부어라, 마셔라, 불러라, 업어라..., 그런데 마음만 들뜰 뿐, 톱니바퀴..
삼각산/도봉산 [꽃길만 걷자] 지리산 종주 산행 준비 할 겸 해서 삼각산과 도봉산을 연계하여 25km 산행길에 나섰다. 봄비가 지나간 산 길에는 진달래가 도열하듯 상큼한 분홍색 단장을 하고 반긴다. 탕춘대 능선 길에는 산벚꽃이 화사하게 도란도란 피어있고, 상기된 얼굴로 새봄을 맞은 돌복숭아 꽃은 분홍빛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흐트러진 옷고름을 고쳐 맨다. 비봉 능선길에도 길 양 쪽으로 진달래꽃이 삐죽빼죽 다투듯 싱그럽게 피어있다. 사모바위 주변에는 노랑제비꽃이 눈 맞춤을 청하는데 눈을 맞추기가 쑥스럽다. 아마 수줍음이 많아 낮 가림이 심한 탓일 것이다. 청수동 암문을 오르는 가파른 길에는 노란 꽃등을 켠 듯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어 꽃밭을 펼치고 있다. 평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데 해발 600미터 정도에서 자생하..
서울대공원 둘레길 [정년퇴직을 앞둔 친구에게] 누구나 한 번 쯤 들어가고 싶어하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권태롭고 짜증 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당장 때려치우겠다며 다짐을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때때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발목이 잡히곤 했다. 어쩌면 용기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할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때 회사를 그만뒀더라면 이유도 모를 행복감에 잠시 젖었을 수는 있었겠지만, 이내 불안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의 권태로움을 벗어나는 일은 궁극의 행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현실 도피의 또 다른 방편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결국 권태를 벗어나려면 그 이면에 붙어 있는 불안을 떼어내야 하는데, 선택의 기로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
창릉천 [너도 봄] 꽃이 피니 봄이다. 아니다. 봄이라서 꽃이 핀다. 나는 모르겠다. 네가 나를 모르듯 나도 너를 알지 못하겠다 [일 시] 2023년 4월 1일 [장 소] 구파발천, 창릉천
삼각산 의상능선 [행복] 자연을 따라 순응할 때 인생도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자신감과 자만심 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삶의 연륜을 쌓으면서 건강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의 중요함도 알았다. 산에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건강한 두 발만 있으면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소박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살았다. 햇빛과 산소는 너무 흔해서, 가족과 친구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로소 햇빛과 공기가 느껴지고 가족과 친구가 보인다. 자연이 내어주는 대로 조금은 모자란 듯 살아가면 될 것이다. 끌어안아서는 가질 수 없지만, 내려놓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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