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57) 썸네일형 리스트형 십년지기 멋모르고 아쉬움 없이 살아온 세월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의 호기심과 설렘이 있었지만, 철없는 아이들처럼 호들갑 떨면서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가슴에 곱게 담아 지어내는 실웃음 하나에도 하늘이 넌지시 웃어주곤 했기에, 당신을 생각하며 나만의 사랑을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삶이 깊어지고 시간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가면서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며 힘들거나 더러워도 불평 없이 내 그림자를 지켜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세월의 탑이 쌓아지는 만큼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학교나 .. 삼각산 영봉 [푸른 오월] 대지를 뚫고 일어 선 새싹. 작은 홀씨의 심장은 푸른색이었다. 삼각산 인수봉. 그의 심장도 푸른색이었다. 오월이 되면 푸른 속삼임을 전하는 까닭이다. 영봉에 올라 인수봉 향기를 바라보는 나의 심장도 푸른색이 된다. 푸른 오월에는 딱따구리도 마른 나뭇가지를 푸르도록 쪼아댄다. 취기가 그나해진 산객은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벤치에 누워 푸른 꿈을 꾼다. [산행 일시] 2023년 5월 14일 [산행 경로] 우이역 - 도선사 - 하루재 - 영봉 - 우이공원 유원지 - 우이역(7.2km) [산행 시간] 4시간 50분 삼각산 나는 늙어 간다. 내가 늙어가는 만큼 친구도 늙어 간다. 하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인생을 사랑한다는 반증이니까. 친구와 산행을 함께 하기로 5개월 전에 마음을 정했다. 까마득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엊그제 약속인 듯 가슴 언저리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났던 친구와 나는 둘만의 시간을 가진 기억이 없다. 환갑을 지난 나이에 객쩍게 산행길에서 둘이서 동행을 한다는 일. 가벼운 걸음일 수도 있겠지만 쉬운 걸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참으로 귀한 시간이다. 산정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일 또한 아까시 향기가 귀밑으로 스며드는 행복감이다. 산행을 함께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오랜 연인을 만나는.. 삼각산 홍시길 봄비가 흠씬 내려 답답하게 갇혀 있던 도심의 시야가 맑아졌다. 그만큼 봄이 한 뼘 더 깊어졌다. 봄 산을 올라왔으니 이제 여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삶은 산행과 닮아 있다. 매일 다니던 산길이어도 갈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삶의 궤적도 매일의 일상이지만 하루하루의 색깔과 바람의 농도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산을 빗대어 삶을 가늠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눈비를 맞고, 바람도 맞았으니 두려울 것은 없다. 발톱이 빠지더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다가 올 계절을 묵언하듯 맞으면 된다. 높이 오른 만큼 시야는 더 커지는 법이다. [산행 일시] 2023년 5월 6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향로봉 - 비봉능선 - 사모바위 - 응봉능선 - 진관사 - 북한산 둘레길 - 불광중학교(10km) [산.. 밀주 [막걸리] 술을 두 번 빚었었는데 아직은 술이 익는 생리를 정확하게 습득하지 못했다. 낮 기온이 상승하는 오월은 술 빚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이때다 싶어 구석에 숨겨져 있던 누룩을 찾아냈다. 2017년 인터넷으로 구매했던 부산 금정산성 누룩이다. 밀봉은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잡균들이 베이지는 않았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내킨 마음이 조급해졌다. 술을 빚기로 마음을 정하고 고두밥을 쪄낸다. 맵쌀과 찹쌀을 이대 일의 비율로 섞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깨끗이 씻어 전기 압력 밥솥에 안치고 물을 자박하게 맞추고 쌀 위에다 엄나무 가지를 올려 취사. 30분 후에 맛있는 향기가 솔솔 나는 고두밥 완성. 고두밥이 충분히 식도록 펴 놓고 술단지를 고르는데 마땅치 않아서 장아찌 담그던 유리단지를 깨끗.. 2023 고양 국제 꽃 박람회 코로라 바이러스로 그동안 중단되었던 고양국제꽃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예전에 비해 규모가 다소 줄어든 느낌이며 꽃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입장료를 15,000원 받는다. 행사의 규모나 준비 상태로 봐서는 입장료를 5,000원 정도만 받으면 딱 맞겠다 싶다. 고양특례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여서 뒷 말이 많을 텐데도 이렇게 준비한 것을 보면 나름 자신감이 있었겠지만 미덥지 않다. 다소 실망스러운 발걸음으로 건성건성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미어터진다. 아마 굶주림이 길어졌던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년에도 이 정도 행사면 굳이 시간 내어서 관람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이 얼마나 많이 높아졌는지, 주최 측에서는 다시 가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 시] 2023년 4월 30.. 삼각산 비봉능선 구름에 갇힌 하늘이 끝내 울음을 삼키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 연둣빛 빗물이 가슴으로 스민다. 산행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던 산객의 마음에 한기가 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인가. 몸을 비틀어 꾹 눌러 짜니 녹색물이 뚝 떨어진다. 그 틈으로 연분홍 철쭉이 꽃잎을 떨군다. 낙엽이 질 때까지는 풋풋하게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綠雨를 품었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그런 만큼 향기도 유달리 푸른 하루였다. [산행 일시] 2023년 4월 29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 향로봉 - 비봉 - 문수봉 - 대남문 - 대동문 - 노적봉 - 백운봉 암문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13.5km) [산행 시간] 4시간 30분 어머님 전상서! 아버님 기일을 맞아 석 달 만에 어머님을 뵈었습니다. 다행히 표정이 밝아서 안심이지만, 작년에 수술했던 허리가 욕심껏 개운치 않아 많이 불편해하시는 모습이 마냥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제는 운전을 못하시겠다며 모닝을 세워두고 노인용 전동차를 새롭게 구입하셨네요. 천하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기개도 세월 앞에서는 한 풀 꺾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를 곱씹었을까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렇게라도 세월 따라 늙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익히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만 깊어질 테니까요. 어머님! 당장은 끼니를 혼자서 해결하시고 계시니 아들 입장에서는 이만한 다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못난 아들은 내일의 어머님을 걱정합니다. 이 시간이 마냥 길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거동이 더 불편해지면 맏아..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1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