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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桃溪遊錄

밀주

by 桃溪도계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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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술을 두 번 빚었었는데 아직은 술이 익는 생리를 정확하게 습득하지 못했다. 낮 기온이 상승하는 오월은 술 빚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이때다 싶어 구석에 숨겨져 있던 누룩을 찾아냈다. 2017년 인터넷으로 구매했던 부산 금정산성 누룩이다. 밀봉은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잡균들이 베이지는 않았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내킨 마음이 조급해졌다. 술을 빚기로 마음을 정하고 고두밥을 쪄낸다. 맵쌀과 찹쌀을 이대 일의 비율로 섞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깨끗이 씻어 전기 압력 밥솥에 안치고 물을 자박하게 맞추고 쌀 위에다 엄나무 가지를 올려 취사. 30분 후에 맛있는 향기가 솔솔 나는 고두밥 완성.

고두밥이 충분히 식도록 펴 놓고 술단지를 고르는데 마땅치 않아서 장아찌 담그던 유리단지를 깨끗이 씻어 말렸다. 그런데 유리단지 안에 장아찌 냄새가 베여 있어 좀 찜찜하다.

서너 시간 지나 고두밥이 완전히 식었다. 누룩과 섞는데 잘 섞이지 않아서 생수를 조금 부으니 잘 섞인다. 자박자박 잘 섞인 누룩과 고두밥을 유리 단지에 넣고 생수를 부어 삼베보자기로 입구를 막고는 이불로 싸고 작은 방에 신주 모시듯 앉혔다.

한 나절 지나니 온 방안에 냄새가 난다. 별 유쾌하지 않은 냄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뭔가 잘못되는 것일까. 유리 단지를 알코올이나 소주로 소독했으면 괜찮았을까. 별 별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술이 빚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10퍼센트 미만일 것이다. 그만큼 자연의 의존성이 큰 작업이다. 술이 제대로 빚어지든지 실패하든지 자연이 결정할 일이다.

이삼일이 지나도 술 익는 냄새가 아니라 잡균들 썩는 냄새가 난다. 실패하더라도 원인을 찾아내야 다음에 참고할 텐데, 도저히 짐작 가는 데가 없다. 누룩이 오래되어서 잡균이 잠입했던가. 아니면 술단지가 장아찌 담갔던 유리단지여서 장아찌의 잡냄새가 영향을 미쳤을까. 유쾌하지 않은 냄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술 단지를 충분히 저어가며 정성을 들였다.

삼일 째 부터는 본격적으로 발효가 되기 시작한다. 뿅뿅 기포 터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리며 술 익는 냄새에 술 향이 조금씩 들어있다. 삼일 동안 잡균들을 이겨내느라 쉽지 않은 싸움이었나 보다. 연약한 미생물의 힘으로 잡균들을 물리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술을 저을 때마다 향기가 더해지니 침이 넘어간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술을 빚을 때, 사나흘 지나  항아리에 술냄새가 어설프게 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방앗간 참새처럼 술독을 들락거리며 익지도 않은 술을 대접으로 퍼서 마셨다. 술이 익을 때쯤에는 술독이 바닥이 나니까 어머니께서는 술 담는 재미가 없다고 투덜거리신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술이 익어가는 향기를 보니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겠다.

오일 째 되는 날부터는 숙성되는 느낌이 든다. 술맛을 보니 시큼한 맛이 제법 그럴싸하다.
고두밥이 뽀로록 거리며 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재미있게 익어간다. 칠 일 째 되니 노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동동주 느낌이다. 이제 자연의 에너지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겠다. 기분 좋게 걸러내어 맛을 보니 금정산성 막걸리 특유의 누룩향이 강하고 신맛이 많으며 뒷맛의 감칠맛이 일품이다.

이 글을 쓰며 입이 궁금해서 한 잔 마시니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다음에는 어떻게 빚어볼까 생각하니 마음이 들뜬다. 자연이 빚어내는 마술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이런 오묘한 맛을 만들어 낼 생각을 했을까. 더군다나 칠 년이 지난 누룩의 악조건 속에서 미생물이 생존해 있다가 자연의 환경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와 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인간의 소견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레시피]
누룩 : 금정산성 누룩(500g)
쌀 : 1.6kg(맵쌀 2,  찹쌀 1)
생수 : 4리터
뉴슈가 : 2스푼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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