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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삼각산/도봉산

by 桃溪도계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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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자]

지리산 종주 산행 준비 할 겸 해서 삼각산과 도봉산을 연계하여 25km 산행길에 나섰다. 봄비가 지나간 산 길에는 진달래가 도열하듯  상큼한 분홍색 단장을 하고 반긴다.

탕춘대 능선 길에는 산벚꽃이 화사하게 도란도란 피어있고, 상기된 얼굴로 새봄을 맞은 돌복숭아 꽃은 분홍빛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흐트러진 옷고름을 고쳐 맨다.

비봉 능선길에도 길 양 쪽으로 진달래꽃이  삐죽빼죽 다투듯 싱그럽게 피어있다. 사모바위 주변에는 노랑제비꽃이 눈 맞춤을 청하는데 눈을 맞추기가 쑥스럽다. 아마 수줍음이 많아 낮 가림이 심한 탓일 것이다. 청수동 암문을 오르는 가파른 길에는 노란 꽃등을 켠 듯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어 꽃밭을 펼치고 있다. 평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데 해발 600미터 정도에서 자생하기 좋은 환경인가 보다. 더 이상 눈을 피할 수 없으니 주저없이 들이대고 마음을 나눈다.

대남문에 이르러 잠깐 쉬면서 갈 길을 가늠하니 백운대가 까마득하게 멀다. 서두르는 성곽 길에도 진달래가 나란히 서 있고, 군데군데 노랑제비꽃이 분홍 진달래와 색맞춤을 한다. 길 한편에서 외롭게 핀 노랑각시붓꽃이 봄볕을 가늠하려 고개를 내민다. 계절이 일러서 그런지 딱 한 송이만 피어 있어 샛바람에 추워 보인다. 더러 양지꽃이 보이기는 해도 아직 이른 지 꽃망울만 오종종 모여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양지꽃도 지천으로 필 것이다. 용암문 지나 노적봉으로 향하는 길에 하얀 제비꽃도 짓궂은 얼굴을 능청스럽게 디민다. 너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만나니 반가울 수밖에.

백운봉 암문을 지나 우이동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현호색이 군락을 이루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마 음달이어서 서두르지 않았던 까닭에 지금까지 피어 있어 산객의 에너지가 되어준다. 하산하는 길에 기대하지 않았던 보라색 처녀치마 꽃을 만났다. 일 년에 딱 한 번 요맘때 산에서만 만날 수 있지만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보니 더욱 반갑다. 하루재 근처에는 연분홍 고깔제비꽃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행으로 지친 산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니 감개 무량하다.

우이동으로 하산하여 골목길 식당에 들러 김치찌개와 막걸리로 늦은 점심을 때운다. 허기를 면하고 취기가도니 도봉산 산행을 이어가려 했던 마음이 흔들린다. 약해지는 마음을 다시 추슬러 우이암으로 향하는 길 양지 녘에 산철쭉이 피기 시작했다. 도심에 있는 관상용 철쭉은 벌써 피었지만 산철쭉은 아직 시기가 이르다 생각했는데, 만나서 반갑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좀 서럽다. 이렇게 계절도 없이 꽃들이 뒤엉키듯 중구난방으로 피는 모습에서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는 듯해 약간의 두려움이 생긴다.

우이암 턱 밑 원통사 돌담에는 산괴불주머니가 연한 노란색으로 수줍음을 달래고 있고, 우이암으로 오르는 양지 녘에 하얀 매화말발도리 꽃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매화말발도리는 일 년에 한 번 이 계절에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수목원이 아니면  만나기 쉽지 않은 꽃이어서 반갑다. 매화말발도리는 예나 지금이나 수줍음이 많은 듯 얼굴을 들지 않으니 아는 체하기도 주저하게 된다.

도봉산 주능선 길 양쪽에도 진달래의 행렬은 지치지 않고 이어진다. 우리나라 진달래는 민족과 함께해 온 의리의 꽃이다. 주능선 길에서는 오봉능선과 신선대, 자운봉,  그리고 힘겹게 지나온 백운대, 인수봉을 품어 안은 삼각산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신선대에 올라 다시 한번 삼각산과 도봉산의 자존감을 확인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하산하는 길에는 진달래 꽃 길이 끊긴다. 인연을 끊으려는 굳은 마음이 엿보인다. 어차피 헤어질 것이라면 서로 냉정해지자는 다짐일 것이다.

헤어짐이 억울한 것은 아니다. 헤어짐은 다시 만날 날을 또렷이 새겨 넣는 의식인 것이다. 다시 일 년의 기다림. 긴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그 무엇이다. 기다림이 없는 만남은 시들은 꽃잎 같은 것이어서 입술 꾹 깨물고 나를 위해 기다리자. 다시 꽃길을 걷기 위해 기다리자. 나를 키우는 것은 나 자신이다.



[산행 일시] 2023년 4월 8일
[산행 경로] 불광역 - 장미공원 - 탕춘대 능선 - 비봉능선 - 청수동 암문 -  대남문 - 대동문 - 용암문 - 백운봉 암문 - 우이동 - 원통사 - 우이암 - 비선대 - 신선대 - 자운봉 - 도봉산역(25km)
[산행 시간] 10시간 10분


족두리봉
흰제비꽃
양지꽃

 

각시붓꽃
동장대
노랑제비꽃
백운대
현호색
처녀치마
인수봉
고깔제비꽃
개별꽃
복숭아꽃
종지나물
산철쭉
우이암
매화말발도리
줄딸기
산괴불주머니
오봉
비선대

 

신선대
자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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