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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소백산

by 桃溪도계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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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떠나보내기 전에 소백산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여차저차 기회를 놓치게 되면 마음이 개운치 않아 한 해 보내기가 찜찜하다. 하여 칼바람을 맞으리라 단단히 각오를 하며 소백산을 오른다. 솔직히 소백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나 수려한 풍광이 마음을 끄는 산은 아니다. 험준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산이다. 그나마 철쭉이 피는 계절에는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어 가끔 안부가 그리운 산이다. 겨울에 소백산을 오르는 이유는 면역 예방주사 같은 세찬 바람을 맞기 위함이다.

 

예전에 지인은 겨울 산행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 아내와 함께 겨울 소백산에 올랐다가 바람을 제대로 만나 혼쭐이 난 적 있다. 장갑도 부실했고, 볼싸개 등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느 겨울 산 오르듯 올랐다가 감당할 수 없는 바람에 휘청거리며 겨우 비로봉에 올랐는데, 도저히 추위와 바람을 견딜 수가 없어 아내를 보호할 생각도 잊어버린 채 혼자서 줄행랑치듯 얼마간 내려와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기다렸다가 아내를 만났다. 부부는 얼굴과 코, 손에 동상이 걸려서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소백산을 오를 생각을 못하고 있다. 

 

들머리에서 어의곡 삼거리까지 오르는 길이 푸근해서 윗도리를 벗어야만 했다. 소백산 공기가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어의곡 삼거리에 올라서니 제법 바람이 세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인지 상고대도 생길 듯 말 듯 간만 본다. 비로봉 오르는 길에서 팔을 벌려도 휘청이지 않는다. 살을 에일듯한 거센 바람은 잠시 마실을 나갔을까. 빈자리에 한결 유순해진 바람이 소백산 바람 흉내만 내고 있다. 아무래도 올해는 소백산 바람맞이가 약했으니 각별히 감기 조심해야겠다.

 

비로봉에서 천동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겨울을 떠나보내기 아쉬운 이들을 위한 배려일까. 천년 주목에도 겨울의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소백산 바람이 매섭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지만, 눈을 입고 있는 든든한 주목을 만나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소주 한 잔이 당긴다. 천동계곡에는 얼음이 녹아내리는 물소리가 정겹다. 어느새 봄을 준비하고 있는가 보다.

 

[산행 일시] 2024년 2월 3일

[산행 경로] 어의곡 탐방지원센터 - 어의곡 삼거리 - 비로봉 - 천동쉼터 - 천동탐방지원센터 - 다리안관광지(12.7km)

[산행 시간] 5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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