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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정상석이 두 개(운악산)

by 桃溪도계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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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 함박눈이 내렸다. 길이 막히면 더디 올 수도 있겠다 싶어 마중을 나간다. 행여 상고대를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했었는데, 나뭇가지에는 눈이 다 녹고 바닥에 잔설만 깔려있다. 오랜만에  만난 운악산의 듬직한 바위와 향기는 변함이 없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출렁다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새롭게 신설한 등로를 올라야 한다. 한마디로 기능성이 전혀 없는 관광용 출렁다리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다. 산과 어울리지도 않고, 기능성도 없는 출렁다리에는 건너는 사람도 뜸하다. 휴일인데도 이 정도이니 얼마 못 가서 흉물로 남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이 상태도 유지하려면 비용을 들여야 할 텐데 한숨이 나온다.
 
미륵바위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등로에는 새롭게 계단을 만들었다. 다니기 편하고 안전해서 좋기는 하지만, 왠지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 일본과 비교된다. 일본의 산에는 웬만해서는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형태를 유지한다. 계단도 없을뿐더러 위험한 곳에는 로프만 설치해 놓는다. 우리나라 산 정상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큼직한 바위를 세워놓고 글자를 새기지만, 일본의 정상에는 나무 팻말에 정상 이름과 산 높이만 페인트로 새겨 놓는다. 정상 인증숏 하는 사람들은 나무 팻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물론 중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얌전한 편이다. 중국에는 길이 없으면 굴을 뚫거나, 바위를 훼손해서 잔도길을 만든다. 더 심하게는 바위를 파서 계단을 만들어 버린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의 방식을 택하되, 일본 보다는 아주 조금만 더 안전한 시설을 설치하는 정도면 좋겠다.
 
비로봉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다. 하나는 가평군에서 설치하고, 다른 하나는 포천군에서 설치했다. 산 정상에 각 지방단체가 영역표시를 해 둔 셈이다. 1,000미터 가까운 고봉에 바위만 한 정상석 한 개 만 설치해도 과한데, 두 개씩 설치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국경을 경계하는 진흥왕순수비도 하나면 족한데, 한 봉우리에 두 개의 정상석은 도저히 납득이 불가하다. 정상석이 2개 있는 봉우리는 이곳 운악산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가끔 관찰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변에 잠재되어 있는 허세의 표본이 아닐까.
 
운악산에서 생뚱맞은 출렁다리를 만나서 상큼해야 할 봄 마중이 찜찜하다. 흉물 때문에 산에 아니 올 수도 없고, 산에 오면 만나게 되는 반갑지 않은 시설물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사람들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많이 찾아와 주면 좋겠다. 그리하면 공을 들여 시설물을 설치한 지방자치단체의 체면이라도 세울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운악산 봄마중을 또 다른 감정으로 저장한다. 
 
[산행 일시] 2024년 2월 24일
[산행 경로] 현등사 입구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만경대 - 비로봉(정상) - 현등사 - 현등사 입구(7km)
[산행 시간] 4시간 20분
 

눈썹바위
미륵바위
남근바위
코끼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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