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落枝낙지(청계산)

by 桃溪도계 2024. 3. 3.
반응형

옛골에서 이수봉 오르는 소나무 길에 나뭇가지들이 혼란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우렁찼던 소나무 가지가 꺾이고 목이 비틀어졌다. 폭설과 바람에 팔을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자라난 세월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늘의 명령이었으니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아픔을 위로할 길은 없다. 들보 만한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으리라. 아픔이지만 희생을 통하여 민족을 살리려 했던 독립운동가 선생님들의 영혼을 떠올려보는 삼일절이다.  소나무는 이번 기회에 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목이 비틀어질 수 있음을 간파해서 아픔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걱정 없이 웃자랄 때만 해도 잘난 줄만 알았는데, 겸손하지 못했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나 굴곡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상처가 없는 삶은 편안하기는 하지만 자칫 무미건조해서 참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종종 작은 상처를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더 큰 아픔을 맞게 되기도 한다. 강물이 똑바로 흐를 줄 몰라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똑바로 흐르다가 둑이 터지는 아픔을 감당하기 힘드니까 상처를 내며 굽어가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청계산의 소나무들이 가지를 꺾고 떨어뜨려 아프기는 하지만, 그만큼 몸은 가벼워졌을 것이다. 이제는 다가올 태풍이 두렵지 않다. 꺾이고 비틀어진 가지들이 아프고 힘들기는 하지만, 조국을 사랑했던 독립운동가 선생님들처럼 분골쇄신했던 결기를 느낄 수 있으니 위로가 된다.  나무들도 생존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 그나마 가지가 꺾인 나무들은 독립할 희망이 남아 있지만 목이 비틀어져 꺾인 나무들은 영혼을 접어야 하는 운명이다.

잔설이 깔린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자신을 훑어본다. 가슴에 담지도 못할 거면서 과한 욕심으로 체하듯 살아온 내 삶에서 가지를 꺾어내야겠다. 쉽지도 않을뿐더러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상처를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자리에 옹이가 굳으면 더 단단해질 수도 있으니 落枝의 아픔을 견뎌내자.

[산행 일시] 2024년 3월 1일
[산행 경로] 옛골 - 이수봉 - 석기봉 - 매봉 - 원터골(10km)
[산행 시간] 4시간


 

 

728x90

'山 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룡,주작,두륜산  (7) 2024.03.31
북한산 영봉  (9) 2024.03.26
정상석이 두 개(운악산)  (12) 2024.02.26
삼각산  (10) 2024.02.09
소백산  (15)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