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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10. 청계산 (2)- 넓은 서울

by 桃溪도계 2006.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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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넓은 서울


1. 산행일시 : 2006년 5월 28일

2. 산행코스 : 원터골 - 원터골 쉼터 - 헬기장 - 매봉(정상) - 원터골 주차장

3. 산행시간 : 2시간 40분


  5월 하순의 청계산이 맑다.

 

  때마침 어제 내린 비로 서울이 넓어졌다. 북한산 인수봉이 내 어깨 옆에 나란히 서서 버릇없이 번쩍이는 내 이마와 머리카락을 새며 장난치듯 견준다.

 

  청계산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물을 버리려고 산에 올라왔다. 조금은 우스운 모습들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세상을 향하여 더럽다고 이야기한다. 인간 외에는 이 세상에서 버릴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른다. 자기만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걸 더럽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발칙한 상상이 귀엽다.

 

  누가 누구를 아니면, 무엇을 버리던 상관없이 하늘은 맑고 청계산은 푸르다. 그 깨끗함이 좋다. 아카시아 나무는 하늘같이 높아서 꽃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철을 놓지 않은 달콤한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싱그럽게 몰려오는 풋풋한 공기가 코끝에서 맴맴 거린다. 세상 시름을 잊고 하얀 구름을 이불삼아 동행한 아내의 품에 안겨 청계산이 꾸벅꾸벅 졸도록 코를 골고 싶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많은 사람들은 시원한 공기로는 다 씻을 수 없어서 계곡에 뛰어들어 발을 걷고 때를 벗긴다. 때가 많은 건지 성미가 급한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재미있는 풍경들이다. 아직 덜 익은 연인들은 핑계 삼아 계곡에서 토닥거리는 즐거움을 그린다. 겉으로 보기엔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가슴에 타는 불덩이를 계곡물에 식히는 거겠지. 좋을 때다.  

 

  매봉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맛은 감칠 나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만들었던 선조들의 선견지명이 엿보인다. 천년을 내다볼 수 있었던 지혜로움에 감탄한다.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북쪽으로는 북한산, 동쪽으로는 멀리 검단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관악산이 안테나를 길게 뽑고 있다.

 

  솔개처럼 날개를 크게 펴고 비행하고 싶다.

 

  이 아름다운 도시와 작은 산맥들의 냄새를 마음껏 맡으며 하늘을 날고 싶다. 일상에서 늘 우리를 찡그리게 했던 아파트와 빌딩들도 청계산 정상에서 내려보면 귀엽고 작은 조각품을 옹기종기 늘어놓은 것 같아 거슬리지 않는다.

 

  우리가 산에 올라오는 이유는 산을 사랑해서 올라오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살자고 산에 올라오는 것이며, 내가 지니고 다녔던 오물들을 버리려고 올라온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거추장스럽게만 보였던 도시의 일면들을 아름답게 품으려는 시도일 것이다.

 

  산에 올라오면 내가 커진다.

 

  내가 커진 만큼 겸손도 넓어진다.

 

  모난 성격을 주체할 수 없어 작은 가슴을 죄이고 세상과 부딪치려고 허느적거릴때마다 청계산에 오르며 나를 달래야겠다. 청계산 정상에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면서 과한 욕심과 헛된 망상으로부터 자유를 찾고 싶다.

 

   내가 청계산을 찾고 싶을 때마다 청계산이 나를 감싸줄 수 있도록 사랑을 익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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