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山 行

(575)
삼각산 영봉 [푸른 오월] 대지를 뚫고 일어 선 새싹. 작은 홀씨의 심장은 푸른색이었다. 삼각산 인수봉. 그의 심장도 푸른색이었다. 오월이 되면 푸른 속삼임을 전하는 까닭이다. 영봉에 올라 인수봉 향기를 바라보는 나의 심장도 푸른색이 된다. 푸른 오월에는 딱따구리도 마른 나뭇가지를 푸르도록 쪼아댄다. 취기가 그나해진 산객은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벤치에 누워 푸른 꿈을 꾼다. [산행 일시] 2023년 5월 14일 [산행 경로] 우이역 - 도선사 - 하루재 - 영봉 - 우이공원 유원지 - 우이역(7.2km) [산행 시간] 4시간 50분
삼각산 나는 늙어 간다. 내가 늙어가는 만큼 친구도 늙어 간다. 하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인생을 사랑한다는 반증이니까. 친구와 산행을 함께 하기로 5개월 전에 마음을 정했다. 까마득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엊그제 약속인 듯 가슴 언저리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났던 친구와 나는 둘만의 시간을 가진 기억이 없다. 환갑을 지난 나이에 객쩍게 산행길에서 둘이서 동행을 한다는 일. 가벼운 걸음일 수도 있겠지만 쉬운 걸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참으로 귀한 시간이다. 산정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일 또한 아까시 향기가 귀밑으로 스며드는 행복감이다. 산행을 함께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오랜 연인을 만나는..
삼각산 홍시길 봄비가 흠씬 내려 답답하게 갇혀 있던 도심의 시야가 맑아졌다. 그만큼 봄이 한 뼘 더 깊어졌다. 봄 산을 올라왔으니 이제 여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삶은 산행과 닮아 있다. 매일 다니던 산길이어도 갈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삶의 궤적도 매일의 일상이지만 하루하루의 색깔과 바람의 농도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산을 빗대어 삶을 가늠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눈비를 맞고, 바람도 맞았으니 두려울 것은 없다. 발톱이 빠지더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다가 올 계절을 묵언하듯 맞으면 된다. 높이 오른 만큼 시야는 더 커지는 법이다. [산행 일시] 2023년 5월 6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향로봉 - 비봉능선 - 사모바위 - 응봉능선 - 진관사 - 북한산 둘레길 - 불광중학교(10km) [산..
삼각산 비봉능선 구름에 갇힌 하늘이 끝내 울음을 삼키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 연둣빛 빗물이 가슴으로 스민다. 산행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던 산객의 마음에 한기가 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인가. 몸을 비틀어 꾹 눌러 짜니 녹색물이 뚝 떨어진다. 그 틈으로 연분홍 철쭉이 꽃잎을 떨군다. 낙엽이 질 때까지는 풋풋하게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綠雨를 품었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그런 만큼 향기도 유달리 푸른 하루였다. [산행 일시] 2023년 4월 29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 향로봉 - 비봉 - 문수봉 - 대남문 - 대동문 - 노적봉 - 백운봉 암문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13.5km) [산행 시간] 4시간 30분
삼각산 원효봉 [행복한 꿈] 북한산성 입구 화장실에 들러서 큰일을 보던 친구는 뒤늦게 깨달았다. 흔히 접해보지 못하던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아차! 여자 화장실이다. 숨죽이며 바깥 동태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는 틈을 타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좀 전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북한산을 품고 빙그레 웃고 있다. 인간은 때때로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러 놓고 그 일을 해결하느라 긴박한 에너지를 쏟고는 성취감을 느끼는 습성이 있다. 어쩌면 친구도 그런 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무 생각 없는 듯 태연하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그 난감함을 극복하느라 짜릿한 감정을 즐겼던 것일까. 아침부터 난처함을 해결했으니 산행 내내 발걸음이 가볍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다. 다음에 또 그..
삼각산/도봉산 [꽃길만 걷자] 지리산 종주 산행 준비 할 겸 해서 삼각산과 도봉산을 연계하여 25km 산행길에 나섰다. 봄비가 지나간 산 길에는 진달래가 도열하듯 상큼한 분홍색 단장을 하고 반긴다. 탕춘대 능선 길에는 산벚꽃이 화사하게 도란도란 피어있고, 상기된 얼굴로 새봄을 맞은 돌복숭아 꽃은 분홍빛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흐트러진 옷고름을 고쳐 맨다. 비봉 능선길에도 길 양 쪽으로 진달래꽃이 삐죽빼죽 다투듯 싱그럽게 피어있다. 사모바위 주변에는 노랑제비꽃이 눈 맞춤을 청하는데 눈을 맞추기가 쑥스럽다. 아마 수줍음이 많아 낮 가림이 심한 탓일 것이다. 청수동 암문을 오르는 가파른 길에는 노란 꽃등을 켠 듯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어 꽃밭을 펼치고 있다. 평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데 해발 600미터 정도에서 자생하..
삼각산 의상능선 [행복] 자연을 따라 순응할 때 인생도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자신감과 자만심 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삶의 연륜을 쌓으면서 건강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의 중요함도 알았다. 산에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건강한 두 발만 있으면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소박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살았다. 햇빛과 산소는 너무 흔해서, 가족과 친구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로소 햇빛과 공기가 느껴지고 가족과 친구가 보인다. 자연이 내어주는 대로 조금은 모자란 듯 살아가면 될 것이다. 끌어안아서는 가질 수 없지만, 내려놓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산행..
관악산 지난겨울 움츠렸던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면 봄 산에도 향기가 돋는다. 봄 산에 대한 기대를 안고 발을 들여놓은 관악산에는 새소리 바람소리 보다 사람소리가 더 많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꽃이 우리 일행들을 생경스럽게 반긴다. 연주대 오르는 깔딱 고개는 친구들과 함께여도 힘들다. 저 고개에 올라서면 어떤 풍경이길래 이토록 자존감을 바짝 세워 꼿꼿이 서 있을까. 한 발 한 발 오르는 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도란도란 호흡을 나누니 견딜만하다. 서울대 입구에서 연주대 오르는 길은 조망이 열리지도 않고 지루하고 힘들다. 그렇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서울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연주대 정상에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정사진을 남기려는 줄이 길게 서 있다. 미세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