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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지리산(16)

by 桃溪도계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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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거친 시련과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끔은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하기도 한다. 북적거리는 소음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스마트폰의 공해를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발길은 산으로 향한다.
 
지리산은 나의 안식처이며, 언제든 달려가면 포근하게 꼭 안아 주는 누이 같은 산이다. 그런데 자주 가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부담 없이 안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버릇이 생겼다. 신비감도 덜해지고 새소리, 바람소리가 예사로 들리기도 한다. 자연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연하천 대피소에 새겨진 서각에는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시지 마라"라고 새겨져 있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오뉴월 감자 서리 하다 들켰을 때처럼 고개를 들기가 민망하다. 지리산은 나에게 진중하게 꾸짖는다. 이제 웬만하거든 지리산에 오지말기를 당부한다. 그런데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리산 종주를 헤아리고 있었으니, 이 못난 자만을 어찌하리오. 
 
산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으니 산객이 오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못난 산객들이 망상을 덧붙여 사람이 곁들여야 산이 외롭지 않을 것이라며 천연덕스러운 변명을 덕지덕지 붙인다.
 
안달복달하지 말고 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지리산이 오라고 할 때까지 버텨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다 영영 부르지 않을까 봐 두려움이 앞선다. 행여 견딜만하더라도 시치미 뚝 떼고 우기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에 가지 못하면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 고독하고 외로운 밤잠을 설칠 것이다.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영영 밤이 깨지 않을지도 모른다. 
 
[산행 일시] 2023년 6월 3일, 4일(세석산장 1박)
[산행 경로] 성삼재 - 노고단 - 반야봉 - 삼도봉 - 연하천 - 벽소령 - 세석산장 - 천왕봉 - 중산리(35km)
[산행 시간] 21시간 30분
 

반야봉 일출
풀솜대
층층나무
큰애기나리
동의나물
미나리아제비
마가목
병꽃
진달래

 

천왕봉 일출
천왕봉
법계사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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